'이사병행, 공부법 알아야 큰 도인'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요진건설산업(주) 본사에서 만난 최준명 종사.
원100기념관, 앞뒷면 각각 정면으로 디자인
현상공모로 설계비 아끼지 말아야
교도 불사, 과소평가하는 풍토 사라져야

소태산대종사와 혈연, 법연으로 영겁(永劫)의 인연을 맺은 요진건설산업 회장 건산 최준명(建山 崔俊明·82) 종사. 그는 교단의 크고 작은 불사에 합력하며 곳곳이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심가로 살아왔다.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요진건설산업(주) 본사에서 만난 그는 "원기100년을 맞아 교당 건축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이제는 교당다운 교당을 지어야 하고, 규모 있는 건축으로 교도들의 심미적 충족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法)만으로 살 수 없기에 이사병행(理事竝行)의 교법으로 무장해 서울교화에 전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에는 본사 송인걸 사장이 배석해 환담을 나눴다.

- 자수성가한 과정이 궁금하다.

195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미군 발주공사를 주된 사업으로 하던 (주)동성상공에 입사를 해 처음 건설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미군부대 발주 공사는 내로라하는 큰 공사였다. 우리나라 건설 맏형이었던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삼환기업 등이 미군 공사에 집중하던 시기다. 20대 초반인 나이에 동성상공 현장소장을 맡아 공사를 지휘하고 있을 때,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만났다. 그때 현대건설은 동두천 보병7사단 막사를 짓고 있었는데 미군공사감독관이 내가 맡은 공사현장과 비교하며 작업이 늦은 현대건설을 질책하더라. 공사를 속도감 있고 꼼꼼하게 추진해 신임을 얻었다. 이를 본 정 회장이 나를 부르더니 같이 일 해보자고 제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성상공에서 퇴사 후 요진건설을 창립할 때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현장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08년에 분양했던 아산시 와이시티(Ycity)다. 분양, 착공에서부터 준공까지 모든 직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밤낮을 잊고 최선을 다해줬다. 휴일도 없이 일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분양률 100%를 완판할 수 있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와이시티 프로젝트는 완판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공유한 임직원들의 헌신 덕분에 큰 성공을 거뒀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를 아파트 명가(名家)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파급력은 내년 입주예정인 일산 요진와이시티(2697세대)로 이어졌다. 수도권에 회사뿐만 아니라 아파트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 10년 전 휘경학원을 인수한 뒤 학교가 환골탈태했다.

원래 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자수성가하면서 깨달은 것은 인재양성이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 열반 이후 마침 기회가 닿아 휘경학원(휘경여자중·고등학교)을 인수하게 됐다.

10년간 거의 매일 학교에 출근했다. 40년 된 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조경 환경을 바꾸는 등 면학 분위기 조성에 정성을 다했다. 외부 인프라 확충은 거의 끝내 앞으로 큰 공사는 없을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의 실력 향상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인근지역에서 가장 가고 싶은 학교,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 인성교육이 잘된 학교로 평가 받고 있다. 휘경학원을 인수하고 10년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 준 교립학교로서 휘경학원 교화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들었다.

휘경학원은 교립학교는 아니지만 교립 못지않게 교화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매년 입학하는 휘경여중·여고생들이 원불교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기 말에는 신입생 100여 명이 입교식을 할 정도로 학교교화가 살아나고 있다. 휘경여중·여고 각 교당에 교무들이 배치돼 학생 교화와 교직원 교화에 매진한 결과다. 교직원 정례법회도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 좋은 교도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휘경학원은 꼭 원불교 교도만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원불교 교법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

- 최근 육군사관학교 화랑대교당 건축에 바쁘신 줄 아는데.

'교당하나 설립하는 것이 다른 물질의 보시보다 공이 훨씬 크다'는 정산종사의 말씀을 받들고 살아왔다. 화랑대교당 건축도 그 연장선이다. 군종이 승인된 후 육군사관학교 교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장교들이 양성되는 그곳에 군 정신전력 강화와 신앙전력을 위해 교법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종 승인 이후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인 곳이 군교화다. 좌산상사께서 여러 해 전부터 내가 건축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내비치셨다. 그냥 지어 달라는 것이 미안했는지 조립식 건물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교당은 5월경에 착공해 연말에 완공할 예정이다. 대지면적 825㎡에 연면적 870㎡ 내외로, 250여 명이 수용되는 대법당과 교무실, 기도실, 사무실, 상담실 등이 포함돼 있다. 설계는 현상 공모해 최고의 작품을 뽑았다. 4대 종교 중 제일 늦게 교당을 짓는데 후발주자로서 이웃종교보다는 더 좋아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특히 교당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다. 완공이 되면 서울교구 각 교당이 화랑대교당의 연원교당이 돼 간식 등을 차례로 돌아가면서 후원해 줬으면 좋겠다.

- 원불교100년기념관 건축이 시작됐다.

이제 교당다운 교당을 지을 때가 됐다. 지명설계를 통해 저가로 할 것이 아니라 제값 주고 수준 있는 종교건축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건축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형편에 맞는 교당건축은 지양하고 규모 있는 교당을 지을 때다. 기존 교당은 복도가 로비다. 로비 공간이 넓어서 교도들이 휴식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교회 공간이 반 휴식공간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원100기념관도 설계비를 아끼지 말고, 현상공모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 또 몇 천 명이 들어가는 건물을 짓겠다는 허상도 깨야 한다. 올림픽대로와 흑석 현충로가 앞뒤로 있어 각각 정면이 되는 디자인을 해야 할 것이다. 기념관 옆을 지나가는 차량들이 많기에 앞뒤 면이 모두 정면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설계해야 한다. 뭐든지 예쁘게 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설계를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 교단 구성원들에게 보감 될 이야기는.

요즘 교도들에게 희사하라고 하는 출가교역자들이 많다. 돈 많은 교도라도 불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출가자들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불사하는 사람은 작은 희사라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금방 불사를 못한다는 뜻이다. 사업을 해보면 그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고민해서 불사한 공로를 과소평가하는 풍토도 개선돼야 한다.

내가 교단에서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모셨다. 휘경학원을 교단에 희사하라는 교무들의 말을 들은 팔타원 종사는 "학원이 나 혼자한 것이냐. 딸 사위 자식들의 돈을 모아 설립한 것인데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대종사께서는 내가 쓸모없는 전답 문서를 살짝 올리면 '이것이 무어시간디. 남편하고 상의한 것이지' 재차 묻고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참말로 상의한 것이지'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희사를 조심스럽게 받았어." 교단의 희사불사(원다르마센터 등)가 부자들에게는 쉬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그 뜻을 잘 알아서 가볍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 또 다른 말씀이 있다면.

우리 교법은 분명히 이사병행이다. 소태산대종사께서 대각 후 뭘 하셨나. 저축조합을 통해 정관평 언을 막았다. 지금의 대학원대학교(전 중앙훈련원)를 지을 때다.

대산종법사께서 '훈련원을 지어야 한다'며 1000일 기도를 하고 계셨다. 그 당시 나는 건설업을 했지만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던 때라 아무 힘도 없었다. 그런데 나를 조실로 불러 이것을 하라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하늘이 하늘이 아니고, 땅이 땅이 아니다' 하셨다. 기도의 스케일이 엄청났다. 이후 20분간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갔던 예타원 전이창 종사(중앙훈련원 건립 책임자)와 대산종법사께 큰 절을 하고 조용히 조실을 나왔다. 그때 예타원 종사가 나에게 '성자의 말씀은 꿈을 꿔도 떡이 생긴다. 함부로 듣지 말라. 깊이 새겨 들으라' 당부했다. 말씀 따라 바로 계약서도 쓰지 않고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 원가만 모아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건축금이 모아지지 않았다. 예타원 종사가 사방팔방으로 애를 썼지만 여전히 모아지지 않아 대산종법사께 하소연했다. 한참 동안 묵묵히 듣고 계시다가 '큰 불보살은 돈도 알아야 하고, 법도 알아야 돼' 건축비 해결에 필요한 돈 얘기는 안하고 나가 보란다. 이 이야기를 예타원 종사가 나에게 전해줬다. 불보살은 법을 주무르듯 공도의 재정도 훤히 꿰뚫어 봐야 한다.

- 서울교화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법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대신 돈 버는 법이 사사로운 이익만 쫓아 챙기라는 뜻은 아니다. 교단을 키우고, 서울교화를 위한 한 방편으로 생각해야 한다. 몇 년 전에는 교무들에게 KTX는 타면 안된다고 조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화를 위해 타라고 한다. 시간을 아끼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편안하게 다니려는 것이 아니다. 서울교화가 특별해지면서 교도회장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야 한다. 교당 교화를 책임지고 이끌고 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표출돼야 한다.

-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내 신념과 의지가 내 생각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대종사 성령이시여 하며 관념신앙, 타력신앙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허상을 쫓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내 삶이 내 생각대로 가고 있는지, 내 뜻과 의지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기도다. 자기의 원이 결단코 이뤄지도록 법신불 전에, 대종사 성령 전에 맹세하고, 나 또한 그 일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호념해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 2697세대를 짓고 있는 일산 요진와이시티(Ycity) 전경.
최준명 회장은

소태산대종사와 같은 동네인 영광군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대종사의 모친(유정천)과 자매지간이다. 그러니까 대종사와 그의 아버지 최복경 대호법이 이종사촌이다. 13세에 고향을 떠난 그는 한국전쟁 당시 중앙총부에서 정산종사와 상산 박장식 종사를 가까이 모시는 등 교단의 주인으로 긴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건설회사인 (주)동성상공에 입사한 후 15년을 근무하다가 퇴사했다. 1971년 6월 요진산업(주)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관급공사 수주와 공동주택 건설에 매진해 왔다.

현재 그는 요진건설산업(주) 회장과 휘경학원(휘경여자중,고)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원불교창필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원광대학교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단 활동으로는 서울교구 교의회의장을 오랫동안 역임했고, 교단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회 단원에 피선돼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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