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는 기다림, 즐겁게 노래하라"

▲ 광양원광어린이집 앞에서 활짝 웃어보이는 교도들. 지난해 원음합창단 결성으로 교화 열기가 뜨겁게 일고 있다.
봄의 길목에서 만난 광양교당의 일요일 아침이 흥겹다. 장구채를 잡은 김도승 교무의 어깨가 들썩일수록 교도들도 신나게 리듬을 탄다. 3월이 되어도 좀처럼 찾아올 것 같지 않던 봄소식을 이곳 광양에서 맞이한 날. 시린 겨울 찬바람을 견뎌낸 매화처럼 광양교당에도 긴 침묵을 깨고 교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손자와 함께 법당에 들어선 김형철 교도는 3대가 같이 교당에 나오게 된 일등공신이다. 타지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귀향한 후로는 부모와 형제를 원불교에 입교시키고 "최근에는 동생네 가족까지 다 교화시켜 종교 갈등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의 행복은 광양교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데…. 과연 광양교당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 일요일 오후 합창 연습하는 광양교당 원음합창단원들 모습이다.

합창소리에 풍성해진 일요일 오후

법당에 들어서니 생활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교도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마침 궁금해 하던 차에 한 교도가 다가와 "교무님, 저희 합창복 어때요?" 하고 묻는다. 생활한복으로 합창복을 맞춘다는 게 그들도 의아했지만, 합창단 총무 박지윤 교도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합창복을 입은 교도들이 법회 안내부터 사회, 노래지도, 단원관리, 차량운행, 점심공양 준비 등등 손이 안 닿는 곳이 없다. 그것도 교무의 지도가 아니라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일이라 한다. '기운이 통하면 교화에도 감응이 있다'는 김도승 교무의 이날 설법이 이들을 두고 한 말일까. 모든 게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광양의 봄은 이들 합창단원들이 몰고 온 모양이다.

지난해 7월 결성된 합창단은 이덕운 교도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는 "비교도를 입교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고, 교화를 하는 교화자가 즐거워야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합창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고 그간의 얘기를 꺼냈다. 처음 7명으로 시작한 광양원음합창단은 비교도, 잠자는 교도를 유입해 현재 12명이 되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30명 단원확보다. 이 교도는 목표 달성을 위해 서울에 사는 가족과 주말 시간도 당분간 반납할 예정이란다.

합창단의 실질적 후원자가 되어주는 강대용 교도는 "요즘 광양교당이 봄을 맞이한 것 같다. 일요일 오후 텅 빈 법당에 화음이 울려 퍼지면 교당에 활기가 돋는다. 조용히 법회만 보고 가던 교도들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하기 시작하니, 모든 게 달라졌다"며 자신은 이러한 변화가 봄소식보다 더 반갑다고 한다.

특히 합창단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 지휘자 정명원 교도와 반주자 김혜원 청년은 마치 이날을 기다렸던 사람들 같다. 정명원 교도는 "혜원이는 어릴 적부터 내가 피아노를 가르친 학생인데 이렇게 청년이 되어 역할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모든 게 때가 있는 것 같다"고 하니 옆에 있던 혜원이도 한마디 덧붙인다. "합창단 반주를 담당하기 전까지는 원불교에 다닌다는 말을 자신있게 못했는데 지금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달라진 내 모습에 스스로도 놀랍다"고 기쁨을 표했다.

사실 광양교당의 원음합창단은 여느 교당에 비하면 아직 새내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화의 동력을 삼고자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남편 교화에 고심하던 여자 교도들이 특히 더 적극적이라 하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직장교화는 교당 교무하기 나름

광양교당의 봄소식은 이뿐 아니다. 교당 근처에 자리한 세 군데의 교화 텃밭이 이들에게 잠재적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교당 1층에 자리한 원광어린이집과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소속 광양시장애인복지관, 광산특수어린이집이 바로 그곳이다. 그동안 이곳의 직원교화가 쉽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김 교무는 부임 첫해부터 관심을 놓지 않았다. 적어도 원불교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법회에 나와야 한다는 신념을 놓을 수가 없어서다. 김 교무는 수요일에 세 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어놓고, 지난해 말부터는 화요일 점심식사 때마다 광양시장애인복지관에 가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그렇게 직접 찾아가 봉사를 하며 함께한다는 뜻을 내비치니 직원들도 교당 교무가 편해져 차츰법회에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자연스럽게 광산특수어린이집과 현재 정무(김도승 교무 정토)가 맡고 있는 원광어린이집 직원들에게 전해져 수요일이면 30여 명이 함께 법회를 본다.

▲ 광양교당 교도들은 김도승 교무의 장구가락에 맞춰원기100년 신년법문 노래를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화 열정을

사실 광양교당은 전무출신의 한 가정이 교화에 총력을 쏟고 있는 모델교당이라 할 수 있다. 매주 전주에서 광양까지 오가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법회를 담당해주고 있는 딸 김혜진 청년이 그렇고, 광양원광어린이집 원장을 맡고 있는 박법인 정토가 그렇다. 특히 박 정토는 원기96년에 정무(1호)를 지원해 김도승 교무를 가장 가까이서 돕고 있다. "대종사님 법대로 살고자 하는 교무님을 보고 있으면 돕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게 이유다. 그 결정에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2년 전, 위기에 놓였던 광양원광어린이집을 지금은 원아모집 때마다 줄이 설 정도로 정상권에 올려놓았으니 그 기쁨이야 비할 데가 없다. 처음에는 정무라는 제도가 너무 어색해 거리감이 느껴졌다는 한 교도는 "한 해, 두 해를 지내면서 정무님의 솔선수범하는 모습, 교당이 환해지고 달라지는 걸 보면서 무척 감사했다. 상 없이 묵묵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닮고 싶을 정도이다"며 그간 숨겨둔 마음을 꺼내 보였다.

하지만 광양교당은 교화에 활력이 생길수록 풀지 못한 숙제가 커다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공간에 대한 부족이다. 법당 뒤편에 자리한 생활관도 그렇지만 당장에 청소년법회를 볼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위치한 동광양 지역에 교당 부지가 있다. 그곳에 문화센터를 지어 선방과 청소년교화를 하고 싶다"는 김 교무. 그는"교도들의 기운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모든 일은 순리에 따라 해야 되어지더라"며 부드러운 미소로 답을 한다. 그 넉넉함이 봄 햇살처럼 포근하게 내려앉는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