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정산 송규 종사는 학인들에게 "옛날 중국의 마을 문지기 후영이 되라"고 당부했다. 후영은 한낱 문지기로되 그 역량과 재주가 장하므로 그 영명이 세상에 널리 떨칠뿐더러 그 보잘것없는 마을 문까지 따라서 드러나게 되었다. 정산종사는 "앞으로 세상은 형식 시대가 지나가고 실력과 실행이 주가 되어, 알되 실지로 알고, 하되 실지로 실천하는 인물이라야 세상에서 찾게 되고 쓰이게 될 것이다"며 "앞으로 어느 직장에 간다 하여도 그 자리 자리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후영이 마을 문을 드러내듯 그대들과 직장이 한 가지 드러나게 하여 주기 바란다"고 학인들에게 부촉했다. (〈정산종사 법어〉 근실편 16장)

정산종사의 말씀을 제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중앙총부 예감직을 수행하고 있는 봉산 이경봉 교무를 보라. 중앙상주선원장을 겸한 그는 작은 키에 연약한 겉모습이지만 자신이 맡은 직책 수행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는 헌신적인 교무이다. 최근 2년여에 걸쳐 연이은 선진들의 열반을 당하여 수없이 이어지는 장례의식과 칠칠 49재를 일천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중앙총부 예감직은 자유가 없다. 언제 초상이 날지 모른다. 한밤중에도 초상이 나면 달려가 열반 독경을 해드려야 한다. 한산 이씨로 고려말 삼은 가운데 한 사람인 목은 이색의 후예로 조선조 선비의 꼿꼿한 기상과 인품을 쏙 빼닮은 원불교 교무이다.

자기 직분에 충실한 또 한 사람이 있다. 원남교당 이도원 교도로 작년 가을부터 중앙총부 안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니까 원불교 익산총부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외모도 품격이 있는데다 친절과 미소와 배려로 총부를 내왕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에도 많은 분량의 오가는 우편물과 택배를 분류하고 연락을 취하는 등 바쁜 일상이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낮근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서울 사람으로 총부에서 제공하는 급료야 실비에 불과하지만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교도로서 원불교 총부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자긍심과 가치관으로 열과 성을 다해 직책수행을 하고 있다.

이번에 정년퇴임한 김성만 덕무도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이다. 중앙총부 관리감으로 도량 관리를 도맡고 있다. 수많은 소나무의 전지며 방충 소독이며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노동에도 항상 얼굴이 화평하다. 정년이 되어 퇴임은 했지마는 자원봉사자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생을 통해 총부 도량관리를 계속한다고 들었다.

우리 교단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다. 교화현장 교무는 교무대로, 대학 교수는 교수대로, 병원이나 한의원의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문화와 복지, 교육과 산업 등 분야마다 이러한 사람들이 주역이 되고 있다. 이처럼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을 때, 세상은 정화되고 질서가 정연하며 살기 좋은 행복한 낙원이 된다. 원불교인들은 참으로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