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여자 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 언니, 동갑친구 그리고 동생이 두 명이다. 안암교당에서 지방 출신 대학생·대학원생 청년들을 위해 작은 생활공간(학사)을 마련해 준 덕분이다. 그 여자 학사에서 복작복작한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주위에서 "학사에 살기 힘들지 않니?" 하고 많이 물어온다. 사실, 힘들 때가 종종 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함께 마음을 맞춰 사는 것이 어찌 쉬울까.

나는 바로바로 청소하기를 좋아하는데, 무던해서 청소를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도 있다. 일찍 자려는 사람이 있고, 올빼미처럼 밤에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사소한 일들로 토닥거리기도 한다.

학사 이름이 '마음공부학사'인데, 마음이 요란해질 때마다 그 마음공부 잘하라고 '마음공부학사'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함께 사는 동지들 덕분에 감동 받는 일도 많다.

음악교육이 전공인 나는, 며칠 전 연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학사생 민정 언니가 아침에 무대용 화장을 해주었다. 언니는 감기 때문에 요양차 용인에 가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 주었다.

"나는 수집광이야." 하며 언니가 화장품을 한 박스 내놓는다. 언니가 이래저래 모으는 걸 많이 해서, 좀 버리라고 내가 잔소리를 종종 했었는데, 그날은 언니가 모은 화장품 덕을 톡톡히 보았다. 동생 경원이도 독감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는데, 안간힘을 쓰고 일어나 내 머리를 고대기로 돌돌돌 말아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다들 헤어숍에서 한 것 같다며 부러워했고, 언니·동생들 덕분에 예쁜 모습으로 연주에 나설 수 있었다.

'학사에 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혼자 지냈다면 아마 무섭고 외로웠을 것 같다. 학사에서 언니, 동생들과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고, 함께 공부하는 정이 많이 쌓였는지 이제는 한 식구 같다. 아침마다 서로 깨워주고, 밥도 챙겨먹고, 아플 때는 서로 챙겨준다.

언젠가 내 생일에 학사 식구들이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주어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그날 저녁 나는 크게 한 턱 쐈다.

학사 교우들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맞아, 맞아! 이게 다 인과야."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교법에 기대어 말을 주고받게 된다.

안암교당 청년은 누구나 때가 되면 강연을 하게 되는데, 마침 내가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 사례 괜찮은 것 같아?"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게 좋을까?" 하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강연원고는 더욱 매끄러워질 수 있었다. 이런 법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청년정기훈련에 함께 참석한 민정 언니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학사에 산다는 것이다. 학사에 살면서 마음공부가 재밌어졌고, 교당에서도 단장, 중앙 역할을 하며 내 역량을 키울 기회를 얻기도 했다.

나는 학사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혼자 살았으면 당장은 편했겠지만, 결국은 나태해졌을 것이다. 친구끼리 살았다면 당장은 재밌었겠지만 마음공부는 잊고 살았을 것이다.

교무님의 지도를 직접 받고 법 동지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마음공부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이곳에 살며, 소중한 인연들을 만난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학사의 타력은 나의 자력을 키우는 큰 에너지원이다. 어서 자력을 키워 세상과 교단에 보은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사 식구들도 모두 지금처럼 서로 응원하며 함께 진급하면 좋겠다.

또 마음공부 학사가 전세에서 벗어나 빨리 신축불사를 이루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원불교 학사가 전국 곳곳에 마련되어 도학과 과학을 함께 공부하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은 장사로 치면 마음공부학사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안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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