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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원 원로교무 1 / 교당에서 야학지도, 전무출신 서원
유향원 원로교무 1 / 교당에서 야학지도, 전무출신 서원
  • 정리=이성심 기자
  • 승인 2015.03.20
  • 호수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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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대불공
원기33년 2월9일 승부교당에서 입교한 관타원 유향원(觀陀圓 柳香元) 원로교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화해교당에 가서 당시 김해운 할머니에게 대종사와 정산종사가 만났던 이야기에서부터 신기한 이야기 등을 들으며 자랐다.

유 원로교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를 따라 교당에만 다니며 살고 있었다. 원기34년 어느 날 정산종사가 승부교당에 내방했다. 유형석 교도회장이 정산종사께 "뒷동산에 올라가셔서 우리 마을 전경을 좀 봐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아저씨 두 분과 우리아버지와 뒷산에 가셨다. 나도 따라 갔다. 정산종사는 전망을 보시고 "참 좋다. 인물이 많이 나오겠다"시며 옆에 나지막한 서당재를 가르켰다. 그리고 "앞으로 저기에 비행기가 내려 앉는다. 전무출신하여 법사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 교당에 가면 맛있고 좋은 것 갖다 드리면 잡수고 그대로 다 놓고 또 다른 교당으로 가는 시대가 온다"고 말씀 해 주셨다. 그때 나는 '전무출신 하면 좋겠구나'하고 맘먹고 교당에 야학도 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3대 교무를 모셨다.

그 후 전무출신 할 기회만 기다렸다. 하지만 노부모를 모셔 줄 사람이 없어 어떻게 하나 고민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 조부님 기일을 당하여 집안 당숙과 재종 오빠 내외가 오셨다. 나는 "진즉에 전무출신하고 싶었지만 못했는데 이제 해야 되겠습니다"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재종 오빠는 나를 바로 앉혀놓고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 그런데 한번 가서 못하겠다고 돌아와선 안 된다. 내가 더 잘 모실 것이니 가서 훌륭한 전무출신이 되어야 한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버스 타고 정읍 기차역에서 이리(익산) 가는 기차를 타고 총부에 왔다. 예전에 대종사 성탑 세울 때 총부에 와 보았기에 누구의 안내도 없이 곧바로 조실로 갔다. 정산종사께 큰 절로 인사를 올리고 일어서니 나를 가르키며 "네가 잘 왔다. 네 뒤로 무수히 나올 것이다. 네가 문열이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어떤 교무가 "너 나하고 가서 살자"하기에 "그러지요"하고 기차를 타고 12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마산교당이었다. 범타원 김지현 교무가 나를 마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4년 8개월을 간사 근무하고 원기45년 중앙선원 2기생으로 입학했다.

원기49년 29세에 군산교당으로 첫 부교무로 발령이 났다. 한 방에 4명이 살던 시절이었다. 청년 10여명은 신심이 있었다. 학생과 어린이 법회도 각각 5~6명이 됐다.

교무는 "나는 10년을 살아도 교도 댁 잘 못 찾는데 너는 길눈이 밝아 순교를 잘한다"고 칭찬도 받았다.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교무는 서울의 한 병원으로 치료를 가셨다. 4개월이 되어도 오지 않으시고 후임교무가 부교무와 같이 왔다. 총부에서는 나를 창평교당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부교무 1년 밖에 살지 않았는데'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창평에서는 '어서 오라'고 연락이 왔다. 군산교당에서는 부교무로 더 살 수 없어 기차를 타고 광주교당을 거쳐 창평교당으로 갔다.

원기50년, 나이 30세에 이렇다 할 교화 경험도 없이 공명과 종명을 받들고 창평교당에 부임했다. 교당은 너른 터에 감나무가 많이 있었다. 모과나무 밭에서 청년들과 사진을 찍고 함께 온 양혜련 교무는 돌아갔다. 교무들이 가고 난 후 주변을 살펴보니 감나무가 50여 그루, 세 칸 기와집에 법당과 생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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