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처럼 아름다운 길, 봄기운과 마주하다

몸보다 마음이 한 발 앞서 봄 마중에 나섰다. 긴 겨울, 혹독한 세파를 견뎌내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이들의 가슴에도 한 발 앞서 봄소식이 희망으로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바람 담아 둘레길에서 전하는 봄소식을 3월 4주에 걸쳐 연재했다.(편집자)

▲ 경상고등학교 갈림길에서 내려와 만난 매화 군락지.

16일 봄 햇살이 몸과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날, 창원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차창으로 비치는 햇살에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은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북창원 IC를 지나고 오래지 않아 천주산 (天株山) 누리길의 시작점인 굴현고개에 도착했다. 길을 떠나기 전 이 고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는데, 와서 보니 말 그대로 고갯길이었다. 창원시 소답동과 북면 지개리를 연결하는 편도 2차선 도로였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굴현고개를 무심코 넘어가기 쉽다. 이 고개를 지나지 않고 좌측에 있는 민가 쪽으로 와야 천주산 누리길 코스로 접어들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표지판에는 굴현고개~마재고개까지의 누리길 코스와 쉼터가 자세히 안내 되어 있다. 일반 등산객들은 주로 굴현고개보다는 100m 떨어진 천주산 등산로 입구를 통해 등반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0년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되자 창원시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만들었거나 각각 추진하던 둘레길을 2014년에 모두 완료했다. 이 둘레길을 모두 이으면 142.6㎞에 이르며, 폭이 좁은 구간은 1m, 넓은 구간은 4m쯤 된다.

올해 3월부터 창원시에서는〈창원의 둘레길 이야기〉책자를 완성해 구 창원과 마산을 잇는 천주산 누리길을 포함한 여러 곳의 둘레 길을 전국에 홍보하고 있다.

▲ 굴현고개에 있는 천주산 누리길 안내판.


'고향의 봄' 동시가 발원된 곳

누리길이 있는 천주산은 시인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동시가 발원된 곳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동시에 홍난파 선생이 작곡을 더해 전 세대가 즐겨 부르는 '고향의 봄'이 탄생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닌 천주산의 주 봉우리는 용지봉(해발638.8m)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두 개의 시와 군을 품었다. 등산객에게 천주산은 봄이 되면 진달래가 온산을 덮어버리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봄의 산이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진달래 축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도심지에 위치하면서도 다양한 구간에서의 출발지와 중간 중간 갈림길이 있어 걷고 내려오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리길의 시작과 종점 코스인 굴현고개와 마재고개 모두 시내버스 정류장을 끼고 있다. 누리길을 이용해 근처 국립 3.15기념관과 정상인 용지봉까지도 오를 수 있다.

누리길 코스는 굴현고개에서 천주암 위-석불암-금강산약수터-안령소류지-터널 위-마재고개 까지로 길이는 약 17.94㎞다.

원만한 산행을 위해 창원시청 별관 산림과에 들러 누리길 코스를 안내받았다. 산행에 능숙한 사람이 걸었을 때 6시간 30분 걸리는 누리길을 초보자와 일반인이 부담 없이 이용하도록 2~3시간 30분 정도의 4코스를 개발했다.

1구간은 마재고개-금강산약수터이며, 2구간은 제2금강산약수터-6쉼터(소계체육공원 위)이며, 3구간은 8쉼터(소계체육공원 위)-굴현고개이며, 4구간은 굴현고개-도계체육공원이다. 총 24.1㎞에 달하는 코스가 힘이 들면 걷다가 마주하는 갈림길에서 내려오면 된다.

굴현고개에서 출발해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걷다보니 대한불교조계종 천주암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보이는 절이다. 입구에는 등산객을 위한 커피와 사탕 등이 마련돼 있다. 천주암을 나오는 길, 왼쪽 나무에 걸린 글귀가 시선을 끈다. '세상의 유희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타니파타〉 중에서'

한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말이다. 천주암 바로 앞에 산불감시원 초소를 지나 올라가니 편백나무 숲길이다. 눈앞에 시원스레 뻗은 편백나무를 보자 상쾌한 기분이 든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준다. 이어 마주치는 천주암 갈림길, 천주산 가는 등산길을 뒤로하고 좌측 누리길로 접어든다. 바위와 나무다리를 차례로 통과하자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봄을 환영한다는 의미일까. 한참동안 새들의 지저귐이 계속된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등산객을 제외하고는 고요하고 한적한 길이 이어졌다.

기분 좋을 정도의 땀이 맺힐 무렵 사람 10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평상이 마련된 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만난 등산객에게 "봄 산행이라 꽃을 기대하며 걸었는데 발견하지 못해 서운하다"고 했더니, 그는 "4월 중순에 오면 진달래 등 꽃을 볼 수 있는데 조금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경상고등학교 갈림길에서 내려가면 매화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주위를 살피며 걷다보니 좌측으로 생강나무 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동그랗고 풍성한 노란 꽃으로 인해 일부 사람은 생강나무 꽃과 산수유 꽃을 헷갈려 한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향기를 맡아보니 특유의 알싸한 향기가 난다. 생강나무 꽃은 우리가 양념으로 사용하는 생강과는 다르다. 나름 봄을 상징하는 꽃을 봤다는 기쁨에 즐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끔 만나는 등산객들은 눈인사로 반가움을 표현한다. 평일이라 혼자서 혹은 둘이서 걷고 있다. 누리길 왼쪽으로는 창원 시내가 보인다. 도심지와 숲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니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화두처럼 맴돌았다. 열심히 정진하라는 의미와 진리를 향한 신앙과 수행 길은 혼자 가기 보다는 친구와 가족 등 대중과 함께 가야 옳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시 발걸음에 집중하고 호흡을 의식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름 모를 나뭇가지에는 초록빛 새싹들이 피고 있다. 싱그러운 봄기운이 그 안에 깃들여 있을 것이다. 길은 계속 이어졌고, 몇 번의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자 목적지인 제2금강산 약수터에 도달했다.

아직까지 차갑게 느껴지는 약수에 목을 축이고 가빴던 숨과 몸을 골랐다. 5시간 이상의 누리길을 걸으며 기대하던 봄꽃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온 일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자신의 호흡과 걸음걸이를 챙길 수 있었다. 눈부신 하늘과 바람, 새들의 지저귐 등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천주산 누리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희망의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봄이 속삭였다. '나의 힘찬 기운을 맘껏 받아들이고 활기차게 살아가라고…'.

▲ 천주산 정상 용지봉에서 바라본 창원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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