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편집장·작가가 되는 독립출판 시대

▲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독립출판전시'가 3월 한 달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서 열렸다.

7년만에 600여종 출판, 기발한 독립잡지 인기
자본 아닌 공감하는 이들 위해 창의·개성 담아

어느 날 보니 나만 빼고 다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왜 연애 안하냐고 줄기차게 물어오지만 않는다면.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연말연시 같은 때 집에 혼자 있다거나 동성친구를 만난다 하면 측은하거나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본다. 연애를 안 하는 상태를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이 사회, 이런 '커플천국 솔로지옥'의 세상 속에 누군가 생각했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얘기하자, 그것도 아예 잡지로 만들자… 그래서 탄생했을 것이다, 이 '계간홀로'라는 걸출한 독립잡지는.

누구나 편집장이 되고 출판작가가 되는 독립출판의 시대다. 독립출판이란 내 돈 들여 내 힘 들여 책을 만드는 것으로, 많게는 무한정이지만 적게는 두 세권만도 펴내는 각양각색 출판물이다. 단독출판, 1인출판, 자가출판이라고도 쓰지만 독립출판이 일반적이다.

왜 '독립'일까. 이 표현은 크게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기존 출판 관행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돈을 벌려고 책 내는 게 아니며, 기존처럼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지면을 얻거나 출판을 요청하는 방식에서 탈피한다.

그러다보니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자녀와 함께 만드는 '가족신문'과 같은 사적 언론이 되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만 아는 내용과 언어로 전문적인 지식을 담아내기도 한다.

독립출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느냐보다는 자신의 비전이나 목표에 공감하고 응답하는 독자들만을 겨냥한다.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가격도 아예 없거나 있어도 격려비, 택배비 정도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펴내는 자유, 광고주도 없으니 '갑'도, 눈치 볼 대상도 없이 펼치는 개성. 이러한 점 덕분에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3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독립출판 전시'를 열어 이 트렌드를 입증했다. 대략 6~7년 전부터 시작된 독립출판 붐은 현재에 이르러 한 해 600여 종이 출판되고 있는데, 이 전시에서 대부분을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광철 '그래픽' 발행인은 점점 다양해지는 독립출판들의 공통점을 '독자나 시장 위주가 아니라 펴내는 사람 위주'라고 짚었으며, 공동기획자 김명수 북아티스트는 "자가출판부터 소규모출판사까지 계속 분화하고 있는 추세라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호응은 역시 뜨거웠다. 평일 오전인데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에 책을 들고 재기발랄한 그들의 개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시에는 사진집, 그림책, 동화, 학술서적, 커뮤니티 신문 등 다양한 장르의 독립출판물이 놓여 있었지만, 역시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잡지였다. 독립출판이 조명받게 된 계기 자체가 잡지이며, 실제로 잡지가 차지하는 출판 비중이 월등히 높다. '여성잡지는 패션, 남성잡지는 자동차, 아주머니는 주부잡지, 아저씨는 바둑' 이런 공식을 산산히 부수는 개성만점 독립잡지들은 입소문을 탔고, 출판부수는 몇천에서 몇 만부에 이르기까지 한다.

〈66100〉은 마른 몸 지상주의에 저항하는 '넉넉한 아름다움'을 담은 잡지다. 제목인 66100은 여자 66과 남자 100이라는, 어쩌면 이 사회가 강요하는 사이즈의 마지노선이다. 커버부터가 삐쩍 마른 유명인이 아닌, 실제로 '플러스사이즈모델'로 런웨이에 서고 있는 김지양 편집장의 도발적인 컷이다. 사이즈와 상관없는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이 잡지의 등장을 독자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플러스사이즈들의 공감사연부터 연애, 화장, 코디 등은 물론, 몸이 아닌 마음의 다이어트나 자존감 향상의 의미와 방법 등 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지도 높은 잡지 중 하나인 〈월간잉여〉는 최서윤 편집장이 실제 취직을 준비하면서 번번히 좌절하며 느낀 현실을 담고 있다. '내일배움카드도 발급받았는데 내 일은 어디에'와 같은 웃픈(웃기지만 슬픈) 글들이 실리고, 매년 신춘문예까지 여는 제법 번듯한(?) 잡지다. '월간'이지만 인쇄비가 없어 '계간'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 함정, 독립잡지를 세상에 알린 주역 중 하나다.

이 밖에도 '럭셔리'를 조금 비튼 '록셔리'나 노처녀들의 이야기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사표쓰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사표' 등이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를 재치로 버무려 읽는 이로 하여금 내내 쿡쿡대게 한다. 내적 자신감 회복을 위한 책 제목 '냄비받침'에 미소가 번지고, '그랜드매거진 할' 속에 나오는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2막에 감동을 받는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드는 독립출판의 세계, 한계가 없으니 그 창의력과 상상력 덕분에 우리네 지쳐있던 삶이 위로도 되고 빛도 난다.

그러나 이 재기발랄한 독립출판서적들은 아쉽게도 아무데서나 살 순 없다. 서울 헬로인디북스,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 5KM 북스토어, 대전 도어북스, 대구 더 폴락 명태, 부산 샵메이커즈, 포항 달팽이책방, 제주 소심한책방 등이 판매처로, 홍대의 유어마인드 등은 독립출판사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기회를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누리는 사람들이 독립출판을 이끌고 있다.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중요한 현대사회, 오랫동안 꿈꿔온 나만의 책, 나만의 잡지는 이제 우리들 곁에 가까이 왔다.

▲ 플러스 사이즈를 위한 〈66100〉.
▲ 잉여도 삶의 방식 〈월간잉여〉.
▲ 비연애를 허하라 〈계간홀로〉.
▲ 실제 그들의 사진집 〈19세여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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