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같은 불교계의 종헌들이 출현하기 전에는 전통에 따라 율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특히 선종에 있어서는 깨달음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청규(淸規)의 역할이 컸다. 동아시아 불교계 종헌들은 서구의 정교분리의 영향을 받아 근대에 제정된 것이다. 필자는 원불교 교헌개정에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 한국, 일본, 대만의 대표적인 불교계 종단의 종헌을 조사하였다. 그 특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종의 역사와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으며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교상판석에 의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를 위해 종헌은 물론 종제, 종강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계 종헌들은 공히 종단의 역사적 연원, 법의 계승, 종조의 깨달음, 소의경전 등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전통을 확립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법인 정관에도 명시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삼사칠증제(三師七證制)와 같은 출가 의식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 전통의 계승, 즉 승려 개개인의 자격을 불법의 계승자라고 하는 위상으로까지 높이는 것에 있다.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종정이 맡는 것은 부처님만이 계율을 제정할 수 있었던 전통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출가중심의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재가자는 동신(同信)으로서 교단 운영의 주체로 확립하고 있다.

둘째, 한중일 불교종단의 종주(宗主), 문주(門主), 법주(法主), 종정(宗正)으로 칭하는 최고지도자는 기본적으로 법의 계승, 해석을 통한 종단의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종단의 정책 결정, 행정, 사법의 실질적인 운영에서는 최고지도자와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분리해가는 면이 나타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우, 종단의 전통 계승은 최고 지도자에게, 종무의 운영 권한과 책임은 행정책임자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조계종은 1962년 통합종단이 출범할 때부터 종정과 총무원장의 권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친 끝에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단을 대표하는 수반의 역할은 총무원장이 맡도록 하고 있다. 조계종의 선거제는 불타 재세 시부터 전원합의에 의해 대소사를 논의했던 갈마(Karma)제도와는 배치되는 것이지만 현재는 민주적인 최선의 방법으로 보고 있다.

셋째, 대만불교계 종헌의 경우, 불교개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만의 대표적인 불교단체로는 불광산사(1970년)를 비롯하여 자제공덕회(1966년), 법고산사(1978년), 중대선사(1987년)가 활동하고 있다. 현대포교의 성공사례의 이유를 전문가들은 현대화된 포교전략, 세계 화교권의 정신적 의지처의 역할, 창립주들의 선각자적인 혜안과 지도력, 변화하는 대만사회에 대한 적절한 포교 프로그램의 개발 등을 들고 있다. 이 종단들은 근대 불교개혁가 태허(太虛)법사의 인간불교의 전통과 인순(印順)법사의 근대교학의 정립에 기반하고 있다.

넷째, 일본불교계의 종헌 중 특기할 것은 권학료(勸學寮)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불교의 최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정토진종이나 정토종의 권학료 조항은 교지(敎旨)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종의 안심(宗義安心)에 관한 문주의 자문에 답신하기 위한 것이다. 즉 종지에 반하는 이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세정토를 부정하는 교리해석이 종지에서 벗어났을 경우에 이단 판별을 위한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종파가 현존하는 일본불교 내에서 자종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정토진종의 경우, 근대교학의 확립과정에서 이단으로 파문되거나 복권된 사례가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불교계 종단의 종헌은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에서도 교단 안팎의 다양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도제양성을 위한 교육제도나 교역자들의 수행 및 수행 위계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불교 교헌개정에서도 교조의 깨달음에 입각한 교법의 정통성이 잘 계승되고, 성불제중 또는 제생의세의 목표를 향한 종교성이 잘 반영되었으면 한다.

<총강분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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