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시어머니
17년간 가족 위해 헌신
우리 지켜준 보살임을 자각해


어느 시인이 우리의 삶을 즐거운 소풍이라고 하였던가. 그토록 아름다운 소풍놀이를 하고 떠난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 내 시어머니! 한없이 그리운 분이다.

어머님을 처음 뵌 것은 지금의 남편과 한 시골면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다. 머리에 비녀를 반듯하게 꼽고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은 평범한 할머니였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분이 나의 인생에 그토록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을!

남편은 5남매 중 막내였지만, 집안 사정상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친정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화목하게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사는 것을 보았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20대였고, 시어머니는 60대 후반이었다. 우리 둘은 취향과 가치관이 너무도 달랐다. 지금까지 형성해온 내 생각과 가치관을 모조리 비워 버리고 온통 시어머니에게 맞추지 않으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잔소리들, 어떤 일에도 비난을 하고 늘 싸늘한 그 눈빛이 무서웠다. 큰아이를 낳고 24시간 시어머니와 한 방에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워서 출산 20일 만에 자진해서 출근을 할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하여 한 집 건너 한 자녀 낳기 등 나라에서도 산아 제한을 강요할 때였다.

직장에서 누구라도 출산 휴가를 내면 대체 인력이 지원되지 않아 옆에 있는 직원이 일 폭탄을 맞는 결과를 초래하는 시대였다. 그런 때에 아이를 둘 낳는다는 것은 참으로 뻔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형제가 같이 자라야 한다며 둘째 갖기를 강요했다.

우리 부부가 말을 듣지 않자 급기야는 머리띠를 두르고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물 한 모금 안 먹고 3일을 버티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백기를 들었다. 대주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대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불을 훤하게 밝히고 현관문을 열어 놓아 남편의 귀가가 늦은 어느 새벽에 노숙자가 집에 들어와 집안이 한바탕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시어머니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원불교에 입교하여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시어머니와의 인연을 상생으로 돌리는 것을 공부 표준으로 삼았다. '시어머니에게 향하는 나의 원망심이 없어지고 진정 고마운 분으로 느껴지면 나의 공부가 완성된 것이다'고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기도도 하고 마음 돌리는 공부도 계속했다.

나하고는 너무도 다른 생각과 가치관들로 인해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공부의 위력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식 버리면 죄 받는다며 남긴 음식을 혼자 다 드시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고, 마침내는 나의 분신인 두 아들을 큰 사랑으로 키워주는 어머니가 부처님처럼 보였다.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집안 살림 알뜰하게 챙겨주고 맡아 해주는 부처님이었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지옥불도 마다하지 않고 해내는 부처님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평생을 우리를 위해 헌신하며 살다가 자신의 몸에 병이 들자, 직장 생활하는 막내 며느리에게 짐이 된다며 큰 결단을 했다. 정년퇴직한 아주버니 댁에 가서 "이제는 네가 나를 돌보라" 하고 큰 집으로 옮기시더니 19일 만에 깊은 밤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17년간을 내 곁에서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혀주는 촛불 같은 삶을 살다간 시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마저 조금도 나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떠나고자 했던 천사 같은 우리 시어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시어머니야말로 나를 지켜주는 보살이었고 내게 큰 공부를 시켜준 진정한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 시어머니가 가신 지 어언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시어머니의 단식투쟁으로 태어난 둘째가 올해 대학원을 졸업했다. 아이가 명문대학에 입학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올 때, 또 예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와서 소개시켜 줄 때 시어머니 생각이 더욱더 간절하다. 시어머니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어머니의 그 희생으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하니, 지금에 와 못다 한 효에 죄송하고 그리운 마음이 절절해진다.

'어머니! 지난날 불효를 깊이 참회합니다. 어머니께서 깨쳐준 그 은혜로 일원가정 되어 늘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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