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을 지천명이라 한다. 내게 있어 천명은 출가였다. 기간제 전무출신 제1호로 출발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소명으로 주어진 중책이 청해진다원이었다.
이는 문화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차가 갖는 정신문화를 우리 원불교의 차문화로 만들어내고, 차문화교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달라는 종명이 천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최남단으로 지금은 연육교로 이어져 육지가 된 완도 초입의 청해진다원. 예전에는 '은선동(隱仙洞)'이라 불렸다. 약 30여만 평의 대지에 차밭만 3만여 평이다. 그 경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흑두루미와 노루가 노니는 은선동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차향(茶香)!
나는 이곳에 와서 제생의세의 대서원과 비상을 꿈꾸며 숨어 살아왔던 선인들의 차향을 찾는 데 나의 여생을 헌신하고자 서원해 본다. 이곳에 온 지 2달여가 지난 지금도 묵어 있는 차밭을 다시 다듬고 있다. 청소하고 정리하는 데만 온힘이 쓰인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아 혼자서 열손 백손처럼 이리저리 차 준비하며 부산을 떨고 있지만 어쩔 때는 그 준비가 더디어 속만 태우기도 한다. 이럴 때는 딱 세 사람만, 아니 두 사람만 있어도 좋겠다는 부질없는 원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잎 두 잎 올곧게 올라오는 찻잎 속 천지의 정기를 느끼며 지극한 정성으로 덖고 비비고, 덖고 비비면서 혼신을 다하여 한 움큼의 차를 세상에 내어 놓으려 한다. 그렇게 정성을 다할 뿐이다.
차의 완성은 농군의 손으로 정성스레 일구어낸 찻잎과 정성스러운 제다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소담스런 다도 자리에서 오롯한 정성으로 차신을 깨워내는 차인의 몫으로 돌린다.
차는 초기에 약용으로 음용되어 왔으나 오늘날은 기호식품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마시는 이가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차의 색·향·미에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차인은 그 어떤 차든지 차의 성정에 맞게 맛깔스럽게 마셔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족하여 모자라면 과감하게 질책하여 잘 만들 수 있도록 큰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다.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라, 그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만드는 이의 정성 부족으로 인한 결과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금 연마하고 또 연마하여 차신을 오롯하게 드러낼 수 있는 차가 세상 속에 나올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한 잔의 차가 세상과 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이는 오직 스승님들과 도반님들의 역할이라 여기며, 나는 장차 우리 교단을 대표해도 부끄럽지 않을 명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심혈을 기울이고 지도를 기다린다.
청해진다원은 선진들께서 온갖 혈성의 노력으로 지켜와 주었으나, 그간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탓에 지금도 그 여파를 감당할 길이 없는 실정이다.
홀로 하는 어려움에 많은 관심과 일손이 필요하여 간곡하게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해본다. 3만여 평의 차밭 제초 및 넝쿨제거 봉사, 찻잎 따기 봉사(숙식 제공), 약 30여만 평의 다원 정리 및 청소 봉사, 황토방 펜션 활용 건, 차명상 등 다양한 차 체험 및 훈련 프로그램 장소 활용, CMS 후원회원 가입신청 등이다(다음카페 '청해진다원'검색).
또한, 정기 및 상시기간에 예비교역자들의 사상선 실습도량으로 활용되어지기를 제언해 본다. 그리고 원기100년 맞이 한정 생산 예정인 차를 할인된 가격으로 주문받고 있다.
나아가 장차 차명상문화와 약용힐링타운을 개설하여, 지쳐있는 이들을 위해서 평온한 쉼터로, 공부를 갈구하는 공부인들에게는 훈련도량으로써의 역할을 다할 예정이다. 이 다원의 주인은 언제든지 활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다만 이 공간을 문화교화의 대도량으로 개척해 갈 뿐이다. 바람이 있다면 나와 뜻을 함께할 동지가 있다면 그 원이 조금은 더 빨리 앞당겨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4월, 대각의 달을 맞아 은선동에 무르익은 대서원차, 대신성차, 대공심차 한 잔 건네본다.
<청해진 다원>
김덕찬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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