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가 어렵다. 기사는 많이도 써왔지만 막상 내가 해보려니 교화능력자들이 새삼 큰 산처럼 보인다.

마음속에 한두 명 꼽고 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기도부터 하자 하면서도 막막하다. 아, 그 많은 사례를 듣고 썼던 기자조차도 자신 없으니 우리의 교화 침체는 바로 나 같은 사람 때문이구나, 싶다. 배우자도 입교 못 시킨 교도회장이며 자녀들은 교당 안 나오는 교무들에 샐쭉하던 내 과거가 반성됐다.

학생 때나 청년 때는 가끔 교당에 친구를 데리고 갔었다. 스쳐간 이도 있지만, 교도로 잘 사는 이도 있다. 그런데 일반이 되고 나이를 먹으니 교화가 더 어렵다. 주말 늦잠이 목숨처럼 소중한 친구들에게 '일요일 아침에 얌전히 옷 입고 교당 가서 앉아있자'는 말이 차마 안 나오는 것이다.

오래 고민해보니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떠오른다. 교당에 데려온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줬던 여유가 사라졌고, 그들이 힘들 때 위로해줬던 넉넉함을 잃어버렸다.

내가 힘들 때 교당에서 받은 위로를 전하자. '그럼 나도 거기 한번 가볼까'라던 그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걸 잃어버린거구나, 교화해야 한다는 상 때문에 교리가 이렇고 마음공부가 어떻고 하며 가르치려만 들었구나.
세상이 변했다. 개인의 고통은 깊은데, 그 해결을 위해 힐링센터, 선센터를 찾는다. 바로 옆에 교당이 있고 성당이 있는데도 외면하는 현실, 우리만이 아닌 종교 전반의 위기다. 그런데 혹시 그 배경에는 바로 이 '가르치려 하는' 고압적인 자세가 있는 건 아닐까. 예전에 계몽하고 잘 사는 법 가르치던 그 시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대학시절, 하숙생이던 내게 교당은 배고플 때 가는 곳, 꾹 참았다가 가서 우는 곳이었다. 이별을 했을 때도 교당에 갔고, 친구랑 싸웠을 때도 교무님 치맛자락을 잡고 징징댔다. 교당밥 먹으며 한참을 얘기하다 보면 다시 살아낼 힘이 생겼다. 우리 곁에 있는 그 숱한 교화대상들에게도 그런 위로와 치유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네 삶은 늘 위로가 필요하다. 젊은 층에게는 더 그렇다. 직장 같은 교당이나 시부모 같은 교무는 인연 데려오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일단 문턱은 넘어와야 그 다음에 깨달음이 있고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먼저 교당 가자고 재촉하는 교도 3년차 신랑이 말했다. "교당 가면 교무님들이 한주 동안 참 수고했다, 내가 한 일이 다 맞다 해주시니 힘난다"는 그는 출퇴근길 동그라미만 봐도 위로받는 기분이란다.

서둘러 가르치지 말자. 이 봄처럼 따뜻한 품과 진심어린 위로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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