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인제자 성위 회복과 함께 창립정신 되살려야
추원보본 정성으로 후진들 심기일전

'불일중휘 법륜부전(佛日重輝 法輪復轉)'

우리 교사(敎史)의 첫 장에 나오는 법구(法句)다. "부처의 해 거듭 빛나고, 법의 수레 다시 굴리다" 라고 풀이해놓은 뜻이 새삼스럽게 가슴 속에 뜨거운 그 무엇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금년은 대망의 교단100년을 맞는 해다. 그리고 지금은 '대각개교의 달' 4월이다. 그래서일까? '법륜부전'의 법문이 마치 '교단의 새로운 한 세기를 맞아 더욱 대종사와 선진들의 구세서원(救世誓願)과 혈성을 체 받아 분기(奮起)하라'는 명령 같이만 들린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시금 일원세계건설의 창립정신과 포부를 되살려 새로운 제2의 도약을 위한 큰 횃불을 올려야 할 때다. 때가 더할수록 '불일중휘 법륜부전'의 법구가 새삼스럽게 초창 당시의 9인 제자들의 혈심혈성을 떠올리며 오늘의 우리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때가 때이어서 일까. 대각개교절의 달을 맞아 우리 9인 선진들을 떠올리면서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한 말을 더욱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최근 〈원불교신문〉에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실로 오랜 체증이 확 뚫리는 소식이었다.

제21회 원로회의에서 우리 9인선진의 호칭문제와 법위추존(法位追尊)에 대한 진지한 의견개진이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말만 들어도 선진들에게 이제 조금이나마 우리 후진들의 무례와 비례를 덜게 된 듯 하니 말이다. 그간 얼마나 죄송스럽고 또 죄스러웠던가. 우리 선진들의 호칭과 법위를 이야기할 때마다 얼마나 염치가 없고 부끄러웠던지! 이제야 우리는 '단언컨대, 9인 법인제자들을 빼놓고는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 할 수가 없다'고 힘주어 목소리를 높이게 된 듯 싶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9인 선진들이야 말로 오늘의 우리 원불교를 있게 한 만고의 대주인공들이시다. 그런데도 우리 후진들은 그간 9인 선진들을 너무나 까맣게 잊고 지내오지 않았던지. 돌아보면 실로 그 큰 불충을 어찌 다 사뢰어야 할지 모른다.

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먼저 특별히 진실하고 신심 굳은 아홉 사람을 첫 9인제자로 삼아 새 회상창립의 기초를 세우시었다. 그리고 9인 제자를 중심으로 첫 조단(組團)과 훈련에 착수하는 한편, 일상의 근검, 절약, 저축으로 장차의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저축조합을 만들고 2만6천 여 평의 정관평 방언공사를 완성하여 영육쌍전의 실지표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백지혈인의 법인성사(法認聖事)를 통해 신성, 단결, 공심을 더욱 굳게 하고 성의정심 무아봉공의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지역의 조단교화(組團敎化)를 통하여 각지의 인연들과 함께(특히, 여성선진들을 주축으로) 교단의 결속을 더욱 두터이 하시였던 바, 바로 이때의 초창선진들이야 말로 우리 교단의 대 창립주요 성인들이신 것이다.

그처럼 지사불변(至死不變) 혈심혈성을 다하신 선진들이시건만, 지금까지의 호칭과 존위를 생각하면 참으로 불충한 후진으로서 그간의 큰 비례와 죄업을 어찌 다 속죄하여야 할지 참으로 송구하고 죄송할 뿐이다.

그러나 비록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어찌 다행, 지금부터라도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성으로 법위를 추존하고 더욱 심기일전 '이소성대', '사무여한', '일심합력'의 창립정신을 부전해 나가는 후진들의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겠는가!

아무쪼록 대망의 교단100년을 맞아, 이번에야말로, 성스런 혈인제자의 성위(聖位)회복과 함께 창립당시의 경륜과 포부를 오늘에 되살려, 중일불휘 새로운 교단중흥의 기치를 더욱 드높여 나갈 수 있기를 충심으로 두 손을 모아 기원해 마지않는다.

<분당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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