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이 좋은 것이나, 작은 선에 얽매이면 큰 선을 방해하고, 지혜가 좋은 것이나, 작은 지혜에 얽매이면 큰 지혜를 방해 하나니, 그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공부를 하여야 능히 큰 것을 얻으리라."

원불교법은 대도정법이다. 오직 큰 것을 이루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작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틀이 있다. 상대처가 있으면 이미 그것은 틀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적인 선은 얼마든지 악으로 변할 수 있는 선이다. 때문에 선이되 믿을 수 없는 선이다.

우리의 성품 자체가 원래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지만 능히 선할 수 있고 능히 악할 수 있으므로 선과 악을 초월한 지선(至善)의 자리에서 나온 선이라야 참다운 부처님의 선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작은 지혜에 스스로 자만하고 자족하게 되면 큰 지혜 얻는 길에 전진이 없게 될 뿐 아니라 죄를 짓게 되는 수가 허다하다.

대원정각, 대반야지를 얻어야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절대적인 대지혜가 된다. 선이나 지혜가 좋은 것이지만 매여 있으면 결코 자유자재의 힘은 얻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물들어 있고 거기에 얽매여 있으면 범부 중생이다. 그리고 작다고 하는 것은 지엽에 그쳐 있는 것이다.

한겨울에 죽은 것 같은 앙상한 가지도 뿌리가 있어 다시 새잎이 나듯이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원동력이 되는 뿌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편협한 삶을 면치 못하게 된다.

대종사님은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며, 가벼운 재주와 작은 욕심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 재주와 발심의 크지 못함을 걱정하라 하노니, 그러므로 나의 가르치는 법은 오직 작은 것을 크게 할 뿐이며, 배우는 사람도 작은 데에 들이던 그 공력을 다시 큰 데로 돌리라는 것이니, 이것이 곧 큰 것을 성취하는 대법이니라"했다.

대욕은 무욕이라 했다. 작은 것에 자연스럽게 매이지 않으려면 큰 서원으로 돌려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해야 한다. 마치 사자나 범을 잡으려는 사람은 토끼나 꿩을 보고 함부로 총을 쏘지 않는 것과 같다. 선행을 실컷 해놓고도 마음에 상을 놓지 못하면 그 선행의 노예가 되고, 작은 지혜로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그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아가는가.

"어두운 밤에는 반딧불도 빛나고 전등이 없는 곳에서는 호롱불도 밝은 듯하나 태양이 솟으면 모든 빛이 따를 수 없는 것이니, 작은 데에 만족하지 말고 영겁을 통하여 수행에 일관하기로크게 서원을 세우라." (〈한울안 한이치〉 법문과 일화, 마음공부)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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