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성자의 인간적인 면 지우고, 숭배하는 과오 저질러
사은신앙은 살아있는 성자로 다시 되살려


원불교에서는 우주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법신불과 더불어 우주의 몸이라 할 수 있는 이 사은을 진리의 대상으로 모신다. 진리는 우주의 어느 곳이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심신에도 깃들어 있다. 심지어는 자연 만물과 사람이 만든 물건에도 깃들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냥 법신불이라 하고 이 법신불은 우주 만물 어디에도 깃들어 있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하면 되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라고 구분하여 나타난 모습까지 신앙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가지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기성 종교와 철학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삶의 애환으로 기복적인 면과 종교 이기주의에 가려진 채 권력과 물질의 탐욕에 가려진 성직자에 왜곡되어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원래 우리 모두가 진리이자 완전체이고 성자다. 예수 석가만이 성자가 아니다. 이 두 인간으로서의 성자를 신격화하고 전법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라고만 하는 우민화적인 교화 행태는 세상을 오히려 어둡게 한다.

인간으로 진리체는 동물적 호르몬과 삶 그리고 영적인 인격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동물로서의 특성을 배제한 성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그 모습은 이미 죽은 모습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성자를 죽여 박제된 모습으로만 만들어 놓고 숭배만 하도록 했지 닮아가려는 마음을 아주 없애 버렸다. 인간의 모습인 성자는 식사하고 잠자고 똥을 싼다. 그리고 결혼해서 사랑하고 애도 낳아 기르면서 무진 애를 쓴다. 이런 삶의 바탕 위에서 실수하고 극복해 가는 모습 속에 성자의 혼이 담겼다. 인간으로 어떤 심법으로 살아갔느냐를 조명해야 이 세상에 성자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동안 철없는 인간의 편협된 생각으로 성자의 모습에서 인간의 요소와 삶을 모두 빼내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다.

원불교의 사은 신앙은 세상에 혼을 불어넣었고 이 박제된 성자에게도 혼을 불어 넣어 살렸다. 이 세상의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 부처란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처란다. 이것을 한 마디로 곳곳이 부처이니 일마다 불공을 하라고 한다. 불공을 제단에 모시고 숭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부처의 특성에 맞게 불공하라는 것이다. 가령, 가수 부처님이 노래를 잘 불러주면 감동에 벅찬 눈빛과 표정과 박수 등으로 표현하는 것과 그에 따른 사례를 하는 것이 불공이 된다. 불공은 그 존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는 마음과 행동이지 신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의 부처에 대한 불공은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보며 삶을 행복하게 가꾸는 것과 아울러 영적인 성장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육신은 세월 따라 수명이 다하게 마련이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차원을 달리하며 영원히 살아가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수행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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