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세찬 바람은 마지막 남은 겨울의 끝자락마저 거두려나 보다. 따스한 봄기운으로 만물을 북돋우고 어느새 매화도 만개하여 훈련원이 매화향에 취한다.

순환하는 천지의 한기운에 그저 숙연할 뿐이다. 신령한 기운은 천지에 다북차 있고 그 기운에 힘입어 어느 것 하나 그 자음(慈蔭)에 들지 않은 이 없다. 늘 있는 것에 집착하여 한번 붙잡으면 떠나 보내지 않으려는 범부중생들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 티끌도 그냥 두지 않고 다 간섭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만물을 주재하며 순환무궁케 하는 법신불 사은의 밝고 공명정대한 힘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살아가면서 진리에 상합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보잘 것 없는 지혜로 얼마나 많은 상을 내고, 악연을 만들고, 죄의 구렁에서 헤매었는가. 깜짝 놀라 한 생각 돌이켜 보매 돌아갈 곳이 있어서 좋고, 합할곳이 있어서 좋고, 의지할 곳이 있어서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내 마음의 고향! 광명과 은혜와 위력으로 우리를 주재하시는 허공법계에 내 마음을 싣고 오늘도 내일도 헌거럽게 살아야 한다. 온가지 이치가 빛나고 있는 그곳에 심신을 맡겨야 한다.

대종사님이 가르쳐 주신 수행길을 총동원해서 그곳에 영생토록 흔들리지 않게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천만가지 일이 주어졌어도 오직 정신일도를 벗어나지 않고 사방을 다 비칠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주머니를 꿰차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촉하고 편협한 지혜는 우리를 더욱 수렁에 빠지게 한다. 하나의 일이 끝나고 나면 한 티끌이 머물기 때문이다. 바람이 지나고 나면 흔적이 없으나 이미 새 기운으로 만물을 장양시키듯 우리의 마음도 비어야 한다.

'지극히 빌수록 밝은 것이요, 지극히 밝기 때문에 영령히 통하나니라'

"비하건대 허공은 본래 청정한 것이나 한 기운이 동함에 따라 바람이 일어나고 바람이 일어나면 구름이 일어나 천지가 어둡게 되는 것 같이 우리의 성품은 본래 청정한 것이나 마음의 동정으로 인하여 무명이 발생하게 되나니, 마음이 정하면 청정하여 명랑하고 마음이 동하면 요란하여 무명이 발생하나니라. 그러나 마음이 동하되 정한 가운데 동하면 동하여도 부동이라 그대로 밝고, 동하는 가운데 요란하게 동하면 무명이 생하여 어둡나니라."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6장

큰 집채 만한 바위덩어리라도 날려 버릴 듯한 세찬 바람도 정한 가운데 불기 때문에 만물을 장양시키는 데 필수 조건이 된다. 그러나 범부 중생은 약간의 지혜를 가지고 삿된 행동으로 망동하면 오히려 상극과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 빠져나올 기약조차 없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스스로 분별주착으로 떠다니는 가지가지의 망상을 항상 주시하고 밝게 돌이켜 비추어서, 가리고 막힘이 없어야만 집착과 상으로 인한 어리석음의 굴레에 더 이상 빠져들지 않는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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