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봄이다. 화창한 봄기운에 이끌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천리향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문득 천리향의 향기가 나로 하여금 10여 년 전 3학년 담임을 하던 당시의 한 학생을 생각나게 했다. 당시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불량학생 그룹에 속해던 한 학생이 있었다. 교칙을 어기고 교우를 괴롭히는 등 학교 폭력을 일삼았으며,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이 학생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부담스러워했다.

학기 초 학급 편성 명단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본 순간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이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지도를 해보려고 주위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애는 뭘 해봐도 안 되는 아이예요.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속 편하실 걸요? 그나저나 최 선생님, 올 한 해 참 힘드시겠네요"라고 속단해버리는 반응들뿐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하필 이런 학생이 왜 내 반에 편성되었지?'라고 원망 섞인 푸념을 했다. 그러나 '내 학급에 속한 학생이니까 내가 잘 지도해서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라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 학생을 잘 키워내라는 법신불 사은님의 뜻일 거야'라고 독백을 하며, 숙명 같은 인연이 맺어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4월 어느 날, 이 학생은 수업 도중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시내 모처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학생을 불러 집중 상담을 하게 됐다. 반항적이고 완강한 태도는 점점 나를 지치게 했고, 포기하고 싶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이 무겁던 어느 날, 법회시간에 '편견을 버리면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설법을 듣고 나서 '그저 편견에 사로잡혀서 내 방식대로 아이를 가르치려고 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학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 후 그 학생을 불러서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니"라고 묻자, 처음에는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언젠가 교실 창가에 놓인 화초의 시든 잎을 떼어주던 그 학생의 모습이 떠올라, "너 혹시 꽃을 좋아하니"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교실에 있는 화초 중 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꽃 화분 하나를 골라보라고 했다. 10여 개의 화분 중 가장 작은 화분에 심겨진 화초를 골랐다. "천리향을 골랐구나. 꽃 향기가 멀리 천리까지 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고 부른단다. 그럼 네가 '천리향'을 한번 잘 돌보는 것이 어때?"라고 제안을 해보았다.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그 아이가 교무실로 달려와서 "선생님! 천리향에 꽃이 피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처음 본 그 아이의 '환한 미소'였다! 이일을 계기로 그 아이는 나머지 화분도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했다. 학급 친구들이 꽃에 대하여 이것 저것 묻기 시작하며 서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친구들이 그 아이를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미용실을 차려 운영하면서 야간대학을 마치고, 결혼하여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서, 미용실 원장으로서, 그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는 '천리향'처럼 사랑의 향기를 풍기며 잘 살고 있다. 그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 당시 편견을 깨지 못하고 나의 고정관념대로 밀어붙였더라면, 이 학생 안에 있는 아름다운 본성을 간과해버린 무책임한 교사라는 크나큰 후회를 할 뻔했다. 이 학생과의 인연을 통해 "교실에서 공부 1등은 한 사람이지만, '마음 1등'은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올해 학생부장을 맡게 됐다. 270명의 담임이라고 생각하며, 편견을 버리고 학생들의 본성을 찾아 존중하면서 이끌어주려고 한다.

'굽은 나무를 곧게 펴기 보다는, 굽으면 굽은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잘 자라게 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

학생부장으로서 좋은 인성의 기본이 되는 학교 생활규칙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훈습(薰習)이 되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의 마음으로 지도하고 있다.

<원광여자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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