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면서 먼저 양해를 구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원문예총 김현오 회장이 본 기획 문화 분야를 총괄하여 4회에 걸쳐 이미 좋은 글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문학은 문화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유념하고 쓰긴 하되 혹시 내용의 중복이나 논리의 비약이 있을 수 있음이다.

또 하나는 이번 기획 '비전 시리즈' 이전에 '성찰 시리즈'가 연재되었는데 문학 분야는 성찰의 발언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미래)을 말하는 자리에서 부득이 성찰(과거)을 언급하는 일이 불가피할 수 있음이다.

문학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선두 자리를 차지한다. 광의의 문학 가운데는 글이나 말로 된 일체의 콘텐츠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종교문학에서 보면 불경, 성경, 유교 경서 등 경전을 비롯하여 종교적 의식문, 설교문이 곧 문학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이들 모두가 문학적 척도에 맞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문학의 범주는 그렇게 광범위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원불교 창립기의 문화풍토를 보자. 대각을 이루신 소태산대종사가 먼저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를 읊은 이래 손수 10여 편의 가사와 다량의 한시를 지었다. 이런 스승의 영향권 안에서 상당수의 제자들이 〈월말통신〉, 〈월보〉, 〈회보〉 등을 통해 문학작품을 남겼다. 재정형편으로 보나 시국상황으로 보나 문화환경이 열악하던 시절에 그나마 이런 매체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원불교 역사에서 길이 감사할 일이다. 교조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교단이 이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콘텐츠를 축적해 놓은 점은 교단사상 가장 자랑스런 문화적 성과이다.

창립기(해방이전)의 이런 콘텐츠는 이후 원불교문학의 밑거름이 되었고, 해방 이후로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도약대 구실을 한 것이다. 이후 〈원불교신문〉과 〈원광〉으로 인해 창작의 마당이 확대된 것이나, 문인협회가 창립되고 〈원불교문학〉 등이 발간되면서 보다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종교문학의 길이 열린 것도 소태산대종사와 선진들의 후광 덕분일 것이다.

종교예술의 제 분야 가운데서도 문학은 색다른 성격을 가진다. 문학을 모든 예술 내지 문화의 기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필자는 문학을 1차 예술이라고 불러왔다. 이는 문학 작품이 자료가 되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2차 혹은 3차의 여타 예술장르로 재가공돼 문화소비층을 찾아가는 열린 장르라는 뜻이다.

예컨대 문학작품 춘향 스토리가 판소리로 무용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혹은 음악과 미술로 변신하며 문화장르 전반을 휘젓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소태산 박중빈의 스토리텔링은 1차로 문학(서사물)이 되지만,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감동이 음악, 미술, 만화 등 2차 장르를 낳고, 다시 이들을 종합해 드라마,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무용극 등 3차 장르로 가공되어 예술적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교단은 이것이 곧 차원 높은 문화교화의 방편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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