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도 이 공부, 이 사업 하고 싶어요"

자녀 모두 일원가족 이끌어
15번째 인터넷법문 사경 진행

자주 내린 봄비로 햇살이 반가운 날, 신마산교당 원타원 박진원 교도(81·圓陀圓 朴眞圓)의 집을 찾았다. 거실 중앙에 들어서자 일원상과 법문, 불전도구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원기65년 남편 지제원 교도의 권유로 입교한 그는 신앙인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하면서 '우리 식구 모두 원불교에 입교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 의사는 묻지 않고 입교했다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난 싫으니 가려면 당신 혼자서 가라고 답했지요."

당시 대구 삼덕교당 박지원 교무는 그에게 "절에 다녀도 괜찮고, 교당에는 천천히 와도 된다"며 자상하게 챙겼다. 당시 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던 남편은 남자 교도가 귀한 시절에 동료 공무원들을 입교시키는 등 교도로서 활약을 펼쳤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박 교무는 부부에게 신도안에 있는 대산종사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원불교 최고 책임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를 한 그에게 대산종사는 시골 부잣집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온화하고 자애로운 얼굴과 검소한 옷차림의 인자하신 모습에 우러러보고 싶고, 좋은 분으로 느껴졌다. 법회 후 그는 "원불교가 싫었는데, 종법사님을 뵙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지고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남편이 원불교가 좋다고 하니 따라야겠습니다"고 감상담을 발표했다.

"그날 대산종사께서 참 진, 둥글 원의 법명을 지어줬습니다. 대산종사께서 저에게 손을 잡으며 '이대로 잘 해보자'고 하셨고 저는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대산종사를 뵙고 와서도 절에 가면 교당생각, 교당에 있으면 절 생각이 나는 등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절의 스님은 이제 절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가정이 편안해야 되니 남편 따라 원불교 가라고 한 것이다. 이후부터 그는 교단의 참된 교도로 정성을 다했다. 교당 일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았다.

자녀들이 결혼하기 전 그는 일원가족이 될 만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뜻대로 이뤄졌다. 현재 3남1녀 손주까지 22명 모두 일원가족이 됐다.

"결혼 적령기인 큰아들에게 기왕이면 신앙이 없는 사람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부탁했습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기독교 모태 신앙인과 결혼했고, 큰 며느리는 결혼하면 교회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아들에게 했습니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시부모와 함께 사는 큰며느리의 불편한 마음이 그는 이해되고 느껴졌다. 며느리에게 그는 종교에 관해서는 일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며느리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 그는 생활 속 실지 불공을 실천했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러가거나, 차도 마시는 등 서로 마음을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지냈다. 그렇게 생활한 지 3년, 큰며느리가 먼저 교당에 가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현재 큰아들 내외(지종우·김정혜 교도)는 동안양교당에서 교도로 활약 중이다. 큰 아들은 교도회장을 역임했고, 큰 며느리는 교당 피아니스트로 봉사 중이다. 둘째 아들 내외(지법현·박명은 교도)는 광명교당 부회장으로, 둘째 며느리는 이달 19일 법호를 받았다.

"신앙생활하면서 떳떳한 것이 가족 모두 교단에 입교한 교도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법호를 받은 것도 좋습니다. 집안 제사는 교당에서 지내고, 설과 추석에는 전 가족이 모여 교단 의식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심고문 올리고 목탁, 죽비, 법어봉독, 성가 등 모두가 책임을 맡아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신마산교당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교당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긴다. 이는 입교 후 교당 일로 집에 늦게 돌아와도 식사를 혼자 챙겨 먹는 남편 지 교도의 외조가 있어 가능했다.

최근 그는 교당에서 시행하는 원불교100년성업대정진 기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전 교도가 시행하는 100년성업기도가 끝날 때까지 교당에 가서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새벽 4시40분에 집을 나선 그는 편도 20분 거리의 교당을 매일 걸어서 다닌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언제나 감사히 여기고 있는 그는 부모님의 덕인지 살면서 몸이 아파 고생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인터넷 법문 사경을 시작한 지 15번째라는 그는 상품으로 받은 컵을 자녀와 친구에게 선물했다. 13번째 사경부터는 교단에서 비용이 들기에 상품을 받지 않는다. 일원상서원문도 하루에 2번씩 노트에 적는 등 경전봉독과 사경을 시간 날 때마다 시행한다.

"정진 또 정진해서 내생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법으로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제중은 못해도 성불은 하자는 다짐을 합니다. 항상 사은님을 모시고 사니 나태하거나 퇴보하지 말고, 혼자 있을 때 저절로 생기는 이 마음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늘 살핍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교단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로 변함없는 공부심을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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