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주재원으로 근무 할 때의 일이다. 유럽은 기독교 문명이 탄생한 곳답게 거리 곳곳에 오랜 된 성당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주일인데도 불구하고 성당이 한산하여 가톨릭 신자였던 직원에게 물었더니 종교세로 미사참례를 대신한다는 것이 아닌가. 어찌 종교인으로서의 신앙과 수행을 돈으로 대신할 수 있는지 매우 놀랐었다.

반면에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생활과 수행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성실히 따르는 우리 원불교가 자랑스러웠다. 이 외에도 교법과 제도의 수월성 등 여러 면에서 볼 때 나는 100년을 맞이한 원불교가 우리 모두의 보람이고 밝은 미래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일을 거울삼아 오늘 새롭게 내일을 희망차게' 열어가기 위해서는 소중히 지켜야 할 것도 있겠지만 과감히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사회의 당면 과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적합성을 잃어버리면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 안에는 헌신과 희생 그리고 봉사가 깃들여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내적 평화를 구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을 살펴야 한다. 신을 경배하거나 진리를 추구한다면 그에 준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파란고해의 중생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원회상이 출범한지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얼마 전부터 교단은 활력을 잃어가고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일원회상의 후속 세대가 교화, 교육, 복지 등 모든 부문에서 체계적으로 양성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원불교학과 지망생이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 교화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교훈적 말씀만으로는 이 시대를 사는 대중들에게 어떠한 감명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원대한 비전과 확실한 진리를 가진 종교일지라도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을 외면한 채 막연한 희망을 제시한다면 조직을 망가뜨리고 구성원들의 사기를 꺾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단차원에서 치열하게 노력할 때 사회가 열망하는 종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교 2세기를 맞아 세상의 변화에 맞춰 우리도 변해야 한다. 일원회상이 주세교단으로 발돋움 하려면 새 시대에 맞는 일원교법의 보편적 학문체계 정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삶의 세계와 우주 자연의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이 모든 것을 꿰뚫는 보편적 진리를 찾아가는 한 차원 더 진화된 원불교학 수립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교법정신으로 돌아가 우민화, 세속화가 가속화 되지 말고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무절제한 소비풍토는 개인과 사회 나아가 자연을 병들게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공부와 삼학 병진의 수행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무시선 무처선으로 심신을 적용하되 정체여여(正體如如)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스스로 수행 정진을 통한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영생을 비춰 볼 수 있는 밝은 거울과 역량을 가져야한다.

일반 교도 역시 전무출신 또는 거진출진으로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시대변화를 통찰하며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혜안과 혈심가진 후속세대 양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재가, 출가 구분 없는 지자 본위의 교단을 만들어야 한다. 내실 다지기에 충실하되 외적 성장에 지나치게 조급해서는 안 된다. 이는 새 종교이자 새 불교로서 대중화를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아울러 진리적 환경보전운동을 신앙차원에서 전개해야한다. 도덕적 양심에 따르는 건전한 시민단체와 연대해 시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현재 교단이 직면한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교단정책 반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일원회상과 인류사회를 열어갈 지성, 덕성, 영성이 조화를 이룬 통합적 지도자와 혈심 있는 지성적 소수가 끝없이 이어져 나올 수 있도록 거진출진 교도들의 의지가 모여야 한다.

종교의 가르침도 마음공부와 함께 문화로 자리 잡을 때 강한 생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이 바로 우리 교도들이 100년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일원문화 창달을 위한 방언공사를 멀리 보며 긴 호흡으로 시작할 때다.

<잠실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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