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마음학교 앱을 오픈한 지 1년이 넘었다. 처음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정체돼 있는 듯해서 마음이 참 무겁다. 처음 앱을 만들 때 '소태산'이 어디에 있는 산이냐는 질문만 받아도 즐거웠다. '이렇게 홍보가 되는 구나' 하고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있는 산이 소태산이라는 농담도 던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격이 없이 시작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번지면 원불교를 알릴 기회가 주어져 좋았다.
그러나 처음 기획한 의도와는 다르게 일부 재가 출가교도들을 중심으로만 앱이 운영 되고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본래 의도는 비교도들에게 대종사의 가르침을 알리고 원불교를 홍보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기에 아쉬움도 있고, 보이지 않게 어려움이 많다는 걸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가끔 TV에서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분야별 '명의'로 소문난 전문의가 나와 죽은 목숨을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누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바로 인터넷으로 '명의'를 검색해 어느 병원 누구에게 가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처럼 나는 소태산마음학교 앱이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소태산마음학교 앱을 설치하여 아침마다 전송되는 마음편지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짬짬이 마음공부 콘텐츠도 챙겨보고, 마음일기도 써 보라고 한다. 고민이 있으면 이메일 상담도 받아보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병의 '명의'인 소태산대종사를 소문내기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일까? 원불교라고 답하면 너무 주관적이라 할 테고, 아무래도 나는 인터넷인 것 같다. 그 인터넷을 일상생활 깊숙하게 파고들게 한 것이 모바일(휴대전화)이라 본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인류가 공존할 수 있게 한 인터넷과 모바일의 핵심은 무엇보다 상호작용에 따른 소통과 교감이다. 몸을 부딪치고 목소리를 듣기보다 손끝으로 이야기하고 남의 이야기나 사회 이슈에 대해 '좋아요'나 댓글로 반응해 주는 사이버 상에서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된다.

요즘 여러분은 누구와 무엇으로 소통을 하고 교감을 하는가? 일상의 소소한 느낌(감각감상)이나 소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가? 혹시 '카톡~ 카톡'하는 소리나 '딩동~!' 하고 울리는 짧은 울림이 공해로 느껴지는지?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목소리보다 휴대전화에서 울리는 메시지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고 있다. 이는 소통과 교감의 통로가 사이버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언어적 도구가 앱을 통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여기에 많은 우려와 비판이 있다. 하지만 결국 선용해 쓰는 것이 대종사의 개교의 동기에 부합되는 바 아닌가. 보이지 않는 사이버상에서의 움직임이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을 하려고 하고, 정보를 얻고 소속감을 찾기 위해 밴드나 카카오톡그룹에 가입을 한다.

개벽을 영어사전에서 찾다보면 'The dawn of civilization, of history, of the new technology'라고 되어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정의된 개벽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대종사께서는 '물질이 개벽되니'라고 했다. 단순한 과학 기술의 발달이나 사회변화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역사·문명의 변화에 기인한 가치관의 변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 가치관의 변화를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법이 점점 사이버세계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개벽이라 한 게 아닐까.

소태산마음학교 앱을 가만히 지켜보다 결국 '원불교 교도수첩'이란 서비스를 지난주에 시작했다. 사이버 세계에 우리 교도들을 모아서 그 힘으로 개벽된 새로운 세상에 나가기 위한 작업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다. 그 속에서 교도들이 소통하고, 교당 간 합력하고, 교화단이 공감하고, 총부에서 각 교당까지 많은 일들과 생각들이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소태산마음학교를 시작할 때 받았던 숙제, 그것은 '마음공부의 세계화'였다. 지금도 나는 그 목표를 위해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엔코디 대표 / 계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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