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숨결 〈정전〉

지구는 쉬고 싶거나 변덕스러움으로
자전과 공전을 멈추는 법이 없다


정성은 어떠한 일에 공을 한결같이 들이는 마음과 행동인데 천지의 모습이 이와 같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거나 자전하다가 오늘은 쉬고 싶다고 멈추는 일이 없다. 때로는 심심하다며 그동안 돌던 반대 방향으로 돌지도 않는다. 만약에 도는 것을 멈추거나 반대로 움직인다면 기후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어그러져서 천지의 생물들이 아우성이게 된다.

천지가 정성스럽기에 만물이 이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이 정성스러움에는 방향이 있는데 그 방향은 천지의 살림을 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천지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개체에서 볼지라도 그 개체는 천지의 살림에 따른 나름대로의 역할로써 정성스럽다.

사람이 천지의 정성한 도를 닮아가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선 그 정성의 방향과 역할이 무엇이냐에 깨어 있어야 맹목적이지 않게 된다. 맹목적인 정성은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기를 바라는 것은 정성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때에 이면우 박사는 그 일과 단체를 망하게 하는 지도자의 조건으로, 해야 하는 일에 무식하고 소신이 있으면서도 부지런한 것을 손꼽았다. 즉 정성스러운데 방향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면 오히려 안 함만 못함을 일컫는다. 이것은 수행자에 빗대어 보면 수행하여 진리의 인격으로 살아가려는 삶을 잃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진리의 인격에 따른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 모든 것에 게으르지 않는지 살펴서 삶의 본의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지닌 영적 동물이지만 철학적 사유와 깨달음의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꾸준하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유와 철학적 사유 그리고 깨달음이란 창의적 사고를 의미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마음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지만 모든 일에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꾸준함이란 불가능하다. 만약 이런 꾸준함을 지니려고 할 때는 오히려 어떤 당위성에 의한 강박관념으로 자기를 가두게 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런 삶은 명예, 체면, 자기 성취 등으로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라 스스로 행복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 건강한 정성스러움은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쉬게 되면 또 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것이 생각과 행동의 습관이 들면 저절로 하게 되지만 이때에도 할 때와 쉴 때가 반드시 필요하다. 저절로 잘되는 데 이르기까지의 수월한 방법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습관을 길들여 가는 것이다. 여기에 좀 더 익숙해지면 깨어 있거나 몰입을 통해서 이루어 가다가 마음과 행동에 자리잡히면 정성스러움이 그냥 삶이 되어 간다.

처음부터 정성스럽게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챙기고 또 챙기다가 자신이 바쁘거나 지쳐서 그칠 때가 있어 멈추었다면, 다시 생각날 때 이내 챙겨서 하기를 거듭하면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잡힌다.

<성주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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