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원 종사의 법하를 떠나 생업에 종사할 때도 언제나 마음 한편에 허전하고 못다 한 보은의 도리에 대한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을 안고 살아 왔다.

그런 관계로 원기85년 초에 지금은 퇴임한 김현 원로교무가 영산성지학교에 와서 서무과장을 해보면 어떠겠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영산성지학교는 정규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일을 도우라는 말씀이었다.

두 마음 없이 수긍을 하고 6년을 근무하면서 영산성지학교의 정규고등학교 인가와 학교법인 영산성지학원의 분리 설립과 성지송학중학교의 신규설립에 대한 행정적 업무의 소임을 다했다. 게다가 학교농장의 계란 생산과 배달을 맡아서 광주·익산·전주 등을 오가며 트럭으로 계란 배달을 하여 수익금으로 학교운영에 일조를 했다.

정규학교 설립인가 이후에는 한문·생명자원교사로 재직하면서도 지역교화에 대한 염원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염원이 있어 원기87년에 원무제도가 정립되니 바로 지원했다. 나는 기관이나 단체교화가 아닌 지역개척교화를 서원했기 때문에 그런 곳에 임명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교단 내 재가교도에 대한 교화자로서의 인식이 아직 때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재가교도의 자질 또한 부족하고 시기상 여건이 합당하지 않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인가될 원무의 지역교화 염원의 뜻을 안고 예비원무를 자처해 매년 원무 정기훈련에 참석했고 뒷자리에 앉아 훈련에 임했다. 그때도 일구월심 지역교화에 대한 염원이었다.

그러다 원기91년 5월, 용원교당 임대차계약을 완료하고 나의 염원인 지역개척교화의 꿈을 펼 수 있게 됐다. 그날 눈물을 흘리면서 법신불 전에 올린 서원기도문이다.

'아직 때가 이르고 소생의 삶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인간의 사리사욕에서 확연히 벗어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은님께서 원무의 지역교화에 대한 마음을 어여삐 보시어 원기91년에 지역교화를 기본으로 한 원무 심사를 통과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드디어 경상남도 진해시 용원동 1199-4번지에 정법도량을 마련하고 교화의 일터를 허락하시니 그 벅차오르는 감회를 억누를 길 없나이다. 소생의 뜻을 기꺼이 받아주신 진해교당 심홍진 교무님과 남혜덕 회장님과 청운회장님 내외와 교도님에게 감읍하고 감읍할 따름입니다. 하늘이 있어 진해교당 교도들의 1000일 기도의 정성이 하늘이 닿았을 것이며 소생의 이 간절한 염원을 아시어 이 뜻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아옵니다.

바라옵건대, 여기 이 도량에서 자기완성과 이웃교화에 진력하여 죽는 날까지 사무여한과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창립정신으로 무장하여 기꺼이 들어가서 법음의 종자를 뿌려 그 꽃을 피우고 열매가 무성하게 하겠나이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호념하여 주옵소서.'

이날의 기쁨은 산과 들에 나뭇가지마다 춤을 추고 잎새가 우쭐거리며 축복해주고, 부산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파도로 그렇다고 화답해 주는 듯했다. 모든 교무님들이 대종사의 혜명의 등불로써 각처에서 순결한 그 젊음을 오롯이 바쳐 살지만 특히나 나의 간절한 뜻을 헤아려주고, 임차액 전액을 흔쾌히 쾌척해 준 심홍진 교무의 아량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열린 정신은 가히 자비 보살의 화현이요, 나 개인으로는 숙세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그 감사함은 반드시 교화를 성공시켜 보답하겠다는 서원으로 키웠다.

<남부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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