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이야기 경청하는 조율의 대가

일과 공부가 따로 없듯
직장과 교당이 일터이자 공부도량

우리 사회 그 많은 가장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은퇴자가 취업자를 훨씬 웃도는 퇴직의 시대, 일생을 바쳐왔던 직장을 떠난 고령층들이 갈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현실은 결혼이나 직업 등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변화시켰다. 청소노동자나 경비 등 용역업에 대한 인식 변화도 마찬가지다.

"시설이나 경비, 청소, 주차대행 등 용역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월급이나 보험 등의 생계 문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활리듬, 자존감을 위해 일을 계속하려 하죠.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으로 퇴직하신 분들도 일자리를 찾아오고, 취업이 어렵다보니 젊은층의 지원도 예전보다 대폭 늘었습니다."

용역서비스업체 성원산업주식회사에서 19년을 재직해온 개봉교당 안양은 교도는 그 세월 동안의 변화를 가장 명확히 짚을 수 있는 전문가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건물이나 시설은 많은 부분 외주로 돌렸고, 이에 불경기 속에서도 용역업 시장규모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만 커지는 상황은 걱정이에요. 도급인(계약자)과 용역인(노동자)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수급인(용역회사) 입장에서는 해결할 문제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셋은 '절대 닿을 수 없는 삼각관계'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익이나 권리를 좇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에서의 역할은 바로 '조율'이다.

"삼각관계 속에서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건물주 측에서 바라는 조건과 노동자들의 실제 업무에서 차이가 곧잘 생기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갈등은 큰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돼요."

이에 그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업무는 이른바 '야간순찰'. 각 현장의 업무일지들을 보고 선정해 현장을 직접 찾는 일이다. 일이 많은 낮보다는 한가한 저녁이나 밤에 가서 '야간순찰'을 하는데, 한달이면 15곳은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애로사항도 살핀다.

"뭘 시정해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말벗 해주러 가는 마음이에요. 특히 경비 일은 종일 말할 기회가 없을 때가 많거든요. 찾아가면 30~40분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푸시죠. 그 이야기를 잘 듣는 경청이 바로 소통의 가장 큰 힘입니다."

소통과 공감, 이해는 경청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업무철학. 뭔가 조언해야 할 것이 있어도 "말씀이 다 맞아요. 그런데 덧붙이자면요~"라고 시작한다. 소태산대종사가 제자들에게 문답감정 했던 방식을 딴 것이다.

"일에서 중간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처세나 정리법을 교당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교당에선 제가 교무님, 어른님들 받들고, 후배들은 이끌어야 할 딱 그런 자리거든요. 덕분에 많이 배우고 제 그릇도 조금은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5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 덕분일까. 회사와 현장을 오가며 이런저런 조율을 하듯, 그에게는 교당이 또한 조율의 공간이다. 임실, 부천, 공항교당을 거쳐 10년 전에야 개봉교당에 왔지만 교도부회장과 교화기획분과장, 단장과 법회 사회를 이미 수년째 맡고 있다. 특히 교당 선배들이 교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모습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 오래전 부모를 여읜 그에게 교무며 교당 선배들은 '마음 속의 부모님, 내 삶의 형·누님'인 것이다.

"일과 공부가 따로 없듯, 직장과 교당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교당에서 교무님, 선배님들 모시는 마음가짐이 곧 직장에서 노동자 분들 대하는 행동으로 나오죠. 그러니 늘 눈과 귀를 열고, 늘 제 행동을 돌아보려고 노력할 수밖에요."

그런 그에 대해 개봉교당 안정연 교무는 "부교무가 없는 동안에 안 교도님이 그 역할을 해줘서 힘든 줄을 몰랐다"고 말한다. 깔끔하고 정성스런 업무능력도 교당에서 빛을 발해, 원기96년 비전선포 후 회의마다 그간의 출석 통계를 내서 교화성장을 비교분석케 도왔다. 개봉교당의 자랑인 셋째주 마음공부법회에도 일기면 일기, 문답감정이면 문답감정 하나하나 세심히 준비한다. 미리 챙기고 준비할수록 제대로 된 값진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 덕분, 교도들 말처럼 '하여간에 뭐든 허투루 하는 법 없는' 그다.

직장과 신앙에서 중간자 역할로 늘 조율을 맡는 안양은 교도. 용역업이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유일한 직업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정성스럽게 상대를 대한다는 그야말로, 직장과 신앙을 더불어 살리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요, 무시선 무처선의 대가 아닐까. 노동의 질이 곧 삶의 질인 시대, 각박해지는 노동환경 속에서도 그와 같은 참주인이 있어 참 많은 이들에게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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