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교화를 위해 반백년기념성업의 일환으로 영어교전이 출판됐고, 미주 교화 40년이 지난 현 시점에는 3개의 영어교전 번역본이 사용되고 있다.

한글 원전을 읽지 못하는 현지인 교도의 관점으로 볼 땐 무척이나 다행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하나의 번역본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다른 번역본을 참조해 보면서 보다 이해가 선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번역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원불교 교도로서 가장 많이 외우고 익숙한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정전〉의 '일상수행의 요법'이다. 영어정전에서 '일상수행의 요법'에 나온 '경계'에 대한 번역을 접하면서 사실, 한글 원전을 읽을 수 있다는 다행감과 번역본에 의지하는 현지인들에게 원전의 의미를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더욱 생겨나곤 한다. 왜냐하면, 3개의 영어정전에서 '경계'는 각각 다른 용어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Trying Situations (힘든 상황), Sensory Conditions (감각을 일으키는 조건), Mental Spheres (정신적 영역).

미주선학대학원 현지인 교도를 대상으로 한 〈정전〉수행편 강의 중에 경계에 대한 번역된 용어 (감각을 일으키는 조건과 정신적 영역)로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는 심지가 '경계'를 따라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어진다고 하였는데, 그 '경계'란 무엇인가?

'경계'를 '감각을 일으키는 조건'이란 뜻으로 번역했을 때, 그 경계로 인해 감각이 따르고, 나의 마음이 요란해진다는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 경계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요란케 하는가? 오직 나의 마음만을 요란하게 한다면 그 경계란 나에게만 경계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경계가 아니지 않나? 왜 나는 그 경계에 요란한가? 라는 물음들을 갖게 되었다.

경계를 정신적 영역이란 번역으로 이해했을 때 그 경계로 인해 나의 마음이 요란해진다는 실체를 설명하는데 훨씬 쉽게 공감대를 갖게 되었다.

경계란 밖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내면의 투사나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경계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이라고 본다. 즉 그 경계에 나의 마음이 요란해졌다 해서 모든 사람도 요란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경계를(감각을) 일으키는 조건이라는 위의 번역에서 일으켰던 물음에 대한 해답을 갖게 되는 듯싶다.

현지인 교도 중 연조가 오래된 교도들은 두 권의 번역본이 나오기까지 상당시간을 초기번역본으로 공부해왔기에 경계의 번역을 '힘든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각자의 마음이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르게 됨을 비추어 보면서 '힘든 상황'으로 번역된 의미의 경계라는 용어에 친밀감과 호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원불교 수행의 측면에서는 경계라는 용어를 마음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을 대조하고자 하는 목적과 연관해서 특수한 의미를 강조하기에, 한글 단어로서의 경계라는 용어가 가진 보편적 의미, 즉 광의를 드러내기보다는 원불교 교리 체계 내에서 마음공부 길잡이의 의미로 그 용어가 번역되었을 때 원전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해에 용이한 번역에 현지인 교도들은 호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원불교의 가르침을 전할 때, 〈정전〉이나 〈교전〉에서 원불교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원불교 전문어를 번역할 경우, 현지인 교도들에게 한글 단어로서의 용어의 충분한 배경이 드러날 수 있는 번역에 바탕하여 원불교 내에서 해석되는 특수적인 의미를 드러낼 때 원불교 교리의 포괄적인 이해가 따르리라는 확신이 들어진다.

'일상수행의 요법'에서의 '경계'라는 용어를 해석할 때에도 상식적으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의미를 먼저 설명하고, 점차적으로 원불교 수행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깊은 뜻으로 이끌어 주는 보편에서 구체적이며 특수적으로의 진행하는 자세가 현지인 교도들에겐 원불교 교리의 원만한 전모와 만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원불교의 공동체에서 통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일반인들과 상식의 수준에서 만나서 소통하도록 하는 부단한 노력은 번역과 연관하여 요청되어지는 해외교화는 물론 한국 내 원불교 교화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