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100년을 앞두고 원불교 문인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 사업으로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

필자 개인으로서도 〈(새로쓴) 소태산 박중빈의 문학세계〉와 〈원불교의 문학세계〉를 냈고, 원불교문인협회에서는 〈원불교문학100년 기념문선〉(시가편)을 이미 냈고 이어서 산문편 출간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 100년을 정리하는 의미는 과거의 정리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더 나아가 미래를 건설할 성찰의 지혜, 미래 건설의 동력을 얻으려는 몸짓이다.

그간 창립의 기초를 닦느라 바쁘다 보니 원불교교단이 문화 쪽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교정에서 관심과 배려는 항상 후순위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문화적 치장은 교단 발전에 효자 노릇을 하는 믿음직한 투자처로 보아야 한다.

대종사는 대각 첫해부터 가사 같은 문학작품을 지었고, 방언공사로 피곤한 제자들을 밤에 모아놓고 탄식가, 경축가를 부르게 하신 것은 왜일까. 그 첫 번째의 목적을 '발심조흥(發心助興)'에 두셨다 했으니 이것은 신앙과 수행의 탄력이 신바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교단적 관심과 지원체제가 뒷받침될 때 문학이든 여타 장르든 발전하고 그 중에 걸작도 명작도 태어난다. 원불교예술 명작 하나가 수백 명의 교화자에 맞먹는 교화 성과와 홍보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교화가 안 된다고 탄식하기보다는 그 백년대계로서 인재양성과 문화투자에 과감해야 활로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

대망의 원불교100년 행사가 다가오고 있다. 문화 분야 혹은 문학 쪽에서는 어떻게 경축과 보은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눈떠야 할 대목은 어떻게 해야 원100 '이전'과 다른 '이후'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름으로 당국과 문인들에게 촉구하고 싶은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교정원 문화사회부를 문화(예술)부로 개편하여 산하에 전문가 그룹을 조직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원100 행사라는 일회성 전시성 지원에 그치지 말고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중장기적 정책을 디자인하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후원이 있었으면 한다. 또 하나는, 지역문인회나 문인협회 운영에 참여하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드러난 혹은 감춰진 재능을 가진 문인들의 능동적 참여를 촉구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가 별개의 것이 아닐 터이지만, 이것은 긴 안목의 통찰이 요구된다. 원문협에서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교단 안에 출재가 문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이들을 발굴하고 조직으로 묶어내더라도 이들이 곧장 문화교화의 일꾼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이 원불교적 가치와 정서를 담은 원불교문학작품을 창작할 때에 그것을 고무하고 장려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원불교가 아직은 브랜드 가치가 빈약하다보니 작품을 발표하고 책을 내더라도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다. 재정적 보상이 없이 대작이 나오기 어렵고, 자비 출판 방법밖에 없는데 좋은 책이 나올 리 없다. 그러나 교단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방법 중에 요긴한 것이 문화예술이고 문학이기도 하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충분한 보상이 없으면 창작을 할 수 없다거나 브랜드 가치가 오른 후에 창작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문인들 스스로가 재능기부요 보은이라는 취지에서 적극 참여하고 힘 모아 원불교문학의 앞날을 능동적으로 개척해야 할 것이다.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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