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장(크기 90.7㎝×27.8㎝×181.5㎝).
소태산대종사가 거실에 두고 사용했던 장롱으로 상단은 거울과 걸이로 구성돼 있으며, 하단은 좌우에 2개의 서랍과 중앙에 2개의 봉으로 되어 있다.

상단을 살펴보면 중앙에는 거울이 있고 거울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4개의 걸이가 부착돼 있다. 걸이의 위치는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부착돼 있는데, 형태는 상단은 길고 위쪽으로 솟아 있으며, 하단은 짧게 돼 있다.

8개의 걸이는 중앙의 거울을 기준으로 맨 위쪽에 좌우 2개, 거울의 중간에 2개씩 부착이 돼 있으나 '거울을 기준'으로 좌측 상단의 첫 번째 걸이와 우측 하단의 첫 번째 걸이 윗 부분이 파손됐다. 우측 상단의 바깥쪽의 걸이는 완전히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하단부는 중앙의 걸이봉을 기준으로 양쪽에 대칭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위쪽에는 높이가 낮은 서랍으로 구성돼 있고, 아래쪽은 높이가 긴 여닫이문으로 돼 있으며 문의 중앙은 가운데 방향으로 손잡이가 되어 있으며,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처음 유물작업을 할 때 소태산대종사 이하 많은 선진들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꼭 한두 개 정도씩은 나오는 유물이 거울이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실용적인 거울로 가까운 곳에 두어 자신의 모습을 챙겼을 것이다.

소태산대종사의 대각 당시에는 공부는 생각도 못하고 제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도 힘든 삶이었다. 하지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 변화시켜 가고자 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희망과 비전이 없고, 간혹 요행으로 일확천금만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정당한 길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변화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지도를 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자신의 관리였으며, 자신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도구가 거울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특히 본 유물은 대종사의 거실에 있었던 유물로 드나드는 가운데 수시로 사용이 됐을 것이며, 옷걸이 등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소지품과 모자, 목도리 등을 걸어두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모자와 목도리 등을 착용할 때 으레 보았을 거울로 짐작할 수 있으며, 그만큼 소태산대종사의 손길이 많이 닿았던 유물로 볼 수 있다.

본 거실장은 소태산대종사가 사용한 이후 비교적 온전하게 관리가 됐다. 여러 경로를 거쳐서 박물관에 온 유물에 비해서 훼손도 적고, 보관상태 등도 양호한 편이다.

초기 교단의 유물이 가급적 여러 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박물관으로 이관되어 보관하게 될 때, 당대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유물 역시도 원본의 유물을 보존처리 해서 통한 수장고에 이관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이렇게 할 때 교단의 유물도 온전히 보존되며, 만대를 두고 초기 교단을 검증하고 연구하는 데 기본이 될 것이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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