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스승을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 중요
정년퇴임 후 일과 중 제일로 성탑참배

육일대재를 앞두고 대산종사가 더욱 그리워진다. 대산종사가 열반했던 원기83년, 그해 6월1일의 일이다.

대산종사는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손발톱을 자르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더니 시자인 나에게 총부 구조실 참배를 가자고 했다. 총부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서경범 교무에게 차를 몰게 하고 셋이서 다녀오자고 했다. 아침8시에 출발하여 총부 성탑 앞 신조실로 올라가는 돌계단 아래에 차를 세우고 대산종사는 나의 부축을 받으며 구조실로 향했다.

대산종사는 구조실 대종사의 영정 앞에 서더니 나를 옆으로 오라고 했다. "너도 같이 참배하자"고 하며 참배를 했다. 대례로 한번 절을 극진히 하더니 두 번째는 힘들다 하며 "네가 내 대신 한번을 더 해라"고 하며 서 있었다. 나는 대산종사를 대신해 극진히 절을 한번 더하고 일어나 대산종사를 바라보니, 대종사 영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한참 후에 대산종사는 "야! 대종사님의 성안이 더 예뻐지셨다"고 하며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러자 다시 "야! 대종사님이 전보다 더 예뻐지셨어!"라고 했다. 그때서야 말씀의 뜻을 알아듣고 "예? 어떻게 영정이 더 예뻐질 수 있겠어요. 전이나 똑같은 영정인데요' 하니 내 손을 꼭 잡고 구조실을 나왔다.

신조실 앞 돌계단에 서서 "성탑은 힘들어 못 가겠으니 여기 서서 대종사님 성탑과 정산종사님 성탑에 망배를 하자" 하며 재배를 하고 한참 동안 나의 부축을 받으며 총부 전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야! 이제 총부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겠다. 참 좋다. 참 좋다. 참 좋아" 하며 흐뭇해했다.

그날 이후 3개월 뒤인 9월17일에 대산종사는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그때의 총부 성탑 참배가 대산종사에게는 일생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총부 순례길이였다.

나는 금년 정년퇴임을 하고 중앙남자원로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나의 일과 중 제일 첫 번째로 성탑참배를 잡았다. 내 나이 칠십을 넘겼으니 원불교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총부에 온 지 50년이 지났다. 나는 원광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마음에 답답한 것이 있으면 성탑에 찾아가 기도를 했다. 요즘은 소태산대종사성탑, 정산종사성탑을 지나 대산종사성탑까지 참배하고 나면 전에 허전했던 마음이 다 없어지고 평화롭고 행복하여 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감사심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성탑 앞에 가서 참배를 해야만 대종사를 만나 뵙고, 정산종사를 뵙고, 대산종사를 뵐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법계를 통해 이 어른들과 심심상련 하고 법륜상통 하면 성탑에 오지 않아도 스승과 하나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던 미국에 있던 세계 어느 나라에 있던 마음으로 모시고 신앙과 수행으로 닮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영산을 가면 대종사와 구인선진들의 성적이 어리어 있어, 그 성령의 기운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고, 총부에 오면 소태산대종사와 정산종사, 대산종사의 성해와 그 일생이 어려 있어 스승님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님 탄생지를 찾아 순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적공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 총부 원로원에 앉아 따스한 밥과 따스한 방의 도움으로 아무 걱정 없이 좌선을 하고, 매일 성탑 참배를 하고 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준 법신불 사은님과 스승님·선후배 동지들에게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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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남자

원로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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