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逢名釋 옛 절에서 스님을 만나니
春山麗景鮮 봄 산에 고운 경치가 신선하네
心源餘淡泊 마음 깊숙이 담박함이 남아
骨氣謝腥羶 기질이 싸움을 싫어하였다네
月眼看眞地 달빛 아래 참된 경지를 보고
仙遊入洞天 신선처럼 노닐어 골짜기에 드네
從來少塵事 예부터 세속의 잡스러움 적었으니
對爾一惺然 그대를 보니 한 번에 깨달음 생기네

'인영에게 드리다(贈印映 4)'-허성(許筬 1548- 1612 조선 중기의 문신)

허성의 본관은 양천, 호는 악록(岳麓), 산전(山前), 선조임금의 스승인 유희춘의 문하생이며 학문과 덕망이 높아 사림의 촉망을 받아 이조판서를 지냈다. 성리학과 문장, 글씨도 뛰어났으며 '악록집'이 전한다.

허성은 1590년 통신사의 종사관이 되어 일본에 다녀오자마자 탄핵을 당하여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동인이며 부사인 김성일은 왜적의 침략설을 부정했으나 동인임에도 불구하고 허성은 서인이며 정사인 황윤길의 주장에 찬성하여 전란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국난(國難)에는 이해가 얽힌 당파를 떠나야 하니까.

위 시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허성이지만 불교적이고 도교적인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의 동생 허봉과 허균, 특히 누이 허난설헌은 도교적인 시를 많이 남겼는데, 이는 화담 서경덕의 문하생이었던 부친 허엽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다음 시 '계원의 운을 빌리다(次韻戒元)'는 한층 더 초탈한 체취를 풍기는데, 예나 지금이나 소인배들은 정의보다 이익을 앞세우면서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밝혀본 들 이 세상이 밝아질까.

바위 문은 적적하여 빈산을 바라보니 / 구름 밖 그대를 만나 한번 크게 웃었네 / 속세의 티끌과 근심을 이제야 씻었으니 / 마음속 한 곳에 참다운 한가함이 있노니 / 옥 같은 산봉우리 조릿대처럼 모여 있고 / 아래엔 맑은 풍경소리가 어렴풋이 얼굴 사이로 들리네 / 해지는 저녁에 동쪽 대 위로 봄바람 불어오고 / 속된 세상 굽어보니 나의 한가로움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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