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문학관

▲ 열린 우물 닫힌 우물.
청와대 옆길을 타고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바로 건너편에 흰색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윤동주문학관이다. 부암동과 청운동이 맞붙어 있는 이곳은 서촌의 끝이다. 서촌은 1930년대부터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노천명과 윤동주와 이상, 소설가 현진건이 모여 살던, 근대 문화 예술의 중심이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윤동주는 근처 인왕산 중턱과 부암동 바위에 올라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윤동주문학관은 원래 수도가압장이였다. 청운동 일대에 수압을 높여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74년에 세워진 건물로, 2009년에 용도를 다하면서 '윤동주문학관'이 임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다 2011년에 건축가 이소진에게 제대로 된 문학관을 부탁하게 된다. 건축가는 건물이 낡고 면적도 작아 헐고 신축할까 고민했지만, 지난 40년간 부암동 고갯길을 넘나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할 이 건물의 풍경을 간과할 수 없어, 리모델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착공을 앞둔 시점에서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고, 건물 뒤 쪽에 묻혀있던 콘크리트 물탱크가 발견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탱크 속에서 건축가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을 떠올렸다. 시인이 글로 시를 쓴다면 건축가는 공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는, 물탱크 앞쪽 방은 콘크리트 지붕을 걷어내고 하늘을 담은 '열린 우물'로, 뒤쪽 방은 영상전시를 위한 '닫힌 우물'로 디자인한다.

멀리서 보이는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의 이미지처럼 하얗고 순수한 모습이다. 입구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 벽에 새겨진 시인의 얼굴과 그가 1938년에 남긴 시 '새로운 길'을 먼저 만나게 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제1전시실에는 시인의 유품과 작품이 실렸던 책들을 볼 수 있다. 가운데에는 생가에 있던 우물도 복원되어있다. 한 바퀴 둘러보면 왼편에 검은색 철문이 눈에 들어온다. 제2전시실로 가는 길이다. 무거운 철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빛이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제2전시실은 실내가 아니라 야외 공간이다. 바로 '열린 우물'이다. 지붕이 사라진 네모난 공간 오른쪽 위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발코니처럼 돌출되어 있고, 가운데 뚫린 네모난 구멍으로 철심들이 균일한 간격으로 벽을 타고 내려온다. 옛날 물탱크실로 들어가던 입구와 철 사다리의 흔적이다. 아래쪽에는 마치 오랜 시간의 단층이 쌓인 것 같은 오래된 물자국이 남아있고, 새로 지어 올린 위쪽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얀 색 벽이다.

빛이 가득한 '열린 우물'을 가로질러 가면, 제3전시실로 들어가는 검은색 철문이 나온다. 무거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컴컴한 공간에는 작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닫힌 우물'이다. 뒤에서 철컥하면서 문이 닫힌다. 오른쪽 위의 작은 구멍으로 차가운 빛이 쏟아진다. 빛이 천천히 사라지더니, 어느새 칠흑 같은 공간에 홀로 서있다. 잠시 후 눈앞에 윤동주 시인의 삶과 죽음의 영상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오래된 물 냄새를 통해 느껴지는 후각의 시간과 벽에 투영된 이미지로 보는 역사의 시간, 윤동주의 글로 느껴지는 시의 시간, 그리고 공간 전체의 울림으로 듣는 청각의 시간.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미지에서 글로, 다시 청각으로. 작은 공간 안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의 시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동스럽다.

영상이 끝나니 천천히 빛이 들어온다. 다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철문을 열고 다시 밝은 '열린 우물'에 나왔다. 아까 본 하늘과 다른 하늘이다. 이곳에 서 있자니 내가 시인이 된 듯하다. 그의 작품을 한 편 골라 소리 없이 읽는다. 눈으로 머리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가 고스란히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돌베개)〉236-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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