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산 송벽조 대희사

유가의 선비로서 정든 고향 성주를 떠나 영광으로 가족을 솔거하여 이사를 온 제자 구산 송벽조에게 소태산 대종사는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대종경 선외록〉 사제제우장(師弟際遇章) 15에 나온다.

대종사 송벽조에게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유가(儒家)의 규모(規模)를 벗어나서 친척 친우의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정든 고향을 떠나 나의 처소에 이사하여 온 것은 그 신심도 장하려니와 이것은 숙세의 깊은 인연이요 실로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사를 오면서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일시에 날리고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를 경제적 곤경에 처하게 만든 구산 대희사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가 이런 말씀을 했다고 전해진다. "구산은 전생에 왕이었다. 임금으로 살 때에 호의호식한 인과로 금생에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다."

필자가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다닐 때에 방학이 되면 대산종법사가 주석하는 삼동원에 가서 법문 정리를 도왔는데, 그 당시 이런 법문을 보았다.

"정산, 주산 종사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부친이신 구산 대희사도 참으로 무서운 도인이시다. 전라도로 이사올 적에 재산을 사기당한 사실을 아드님들에게 일체 말씀하지 않았다. 좋지않은 일로 걱정을 하게 만들까봐. 정산, 주산 종사 형제분도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으면서도 부모님이 마음 아파 하실까봐 부모님에게 아는 체를 일절 하시지 않으셨다. 참으로 무서운 불보살이요, 도인들이시다."

후일 손녀인 월타원 송관은 교무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에도 사기를 친 그 사람이 몇 차례 다시 할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했는데도 할아버지는 여력이 닿는대로 그를 도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라."

참으로 삼세인과는 무섭고 여실한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즉 삼세가 맞물려 돌아가는 인과응보의 진리가 참으로 역연함을 우리는 알고 살아야 한다.

구산 송벽조 대희사의 소태산 대종사를 향한 신성은 그러한 혹독한 경계를 만나고서도 한치의 흔들림도 변함도 없었다. 이러한 구산대희사의 모습과 심법을 익히 안 소태산 대종사는 법위사정에서 구산대희사에게 당대의 최고점을 주었다.

구산 송벽조 선진의 법위는 〈원불교 교사〉에 의하면 소태산 대종사가 친히 사정한 원기 13년도 창립 제1대 제1회를 기념하는 제1차 법위사정에서 송벽조, 김기천, 송규, 송도성, 이동진화, 이공주 등 6인이 정식 특신부로 교단 최초의 반열에 올랐으며, 원기 16년 제2차 법위사정에서 예비 법마상전부에 송도성, 김기천, 전음광, 송규, 이동진화, 이공주, 송벽조 등 7인이 교단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원불교신문사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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