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마음을 공부하는 곳이다." 이 한 마디의 선명함이 좋아서 교당에 다녔다. 유년·학생시절을 거쳐 청년회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언제나 그렇게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던 중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공부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입으로 떠들었던 그 말이 내가 해야 할 몫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답답한 두려움과 뿌리 깊은 원망심의 파란고해 속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심고뿐이었다.

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답을 달라고, 답을 알게 되면 정말 열심히 보은하며 살겠다고 몸부림을 치던 대학 3학년 겨울이었다. 유년시절 교무님의 인연으로 유치원 교사 마음공부훈련에 참석하게 됐다.

막혔던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매달려 봐야겠다'싶어서 훈련을 지도해 준 한성심 교무님에게 기재한 일기를 우편으로 보내 문답감정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부터는 정전마음공부훈련에 정식으로 참석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평범한 청년이 법 깊은 스승의 말씀 받들며, 속정 깊은 공부인들과 공부하는 재미로 밤새는 줄 몰랐다.

교직에서 아이들을 살려내는 원무들을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법으로 공부하는 그 힘이 바로 나를 살리고, 내가 만날 아이들을 살려주는 일이겠구나 싶어 교전 한 귀퉁이에 '경계는 진리가 주는 선물'이라 써놓고 경계마다 공부찬스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공부심으로 무장하고 아이들을 만나 '경계왕국'이라는 애칭을 붙여가며 마음공부로 고군분투하며 방학 때는 꼬박꼬박 교사회훈련에 참석했다. 교법으로 인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 새내기교사라는 이름표가 떼어질 때쯤 선배 원무 한분으로부터 원무지원을 권유받았다. 펄쩍 뛰며 손사래 치는 내게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 하면서 원무라는 직책을 받아 더 배워나가면 된다는 말에 처음으로 '원무서원'을 생각하게 됐다.

어렴풋이 서원이라는 걸 세우고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교당에서는 청년회원들과 기회만 되면 공부 자리를 만들어갔다. 아이들도, 선생님인 나도 경계에 끌려갈 수 있으며 그 마음으로 공부한다는 믿음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보여주며 실천 중심의 인성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선생님, 어제 친구들이랑 횡단보도에 서 있었는데 한 명이 그냥 건너려고 했는데 저희가 '너 경계야' 이렇게 말해서 무단횡단 안 했어요"라며 신나서 조잘거리는 아이들과 기수마다 일기집도 만들었다.

대전교당 청년회장을 할 때는 지금은 출가해서 교무가 된 청년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 분위기를 만들어 법회 후 마음공부 시간을 따로 운영하며 자체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우연한 기회에 대전지역 교도 교사 몇 분과 그 분들의 인연으로 교사 마음공부방을 진행하게 됐다.

그러다 둘째아이 출산으로 잠시 쉬었다가 동대전교당 일반법회를 보기 시작하면서 교당 교무님의 권유로 교당 내에서 교사 공부모임을 진행했던 것이 후일 대전충남교구 교사회 창립의 밑거름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막연했던 원무 서원이 구체화되면서 드디어 원기93년 원무지원을 하게 됐다.

<동대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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