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스승의 날 아침 풍경이다. 교단의 원로교무들이 수도원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겠다고 일렬로 서 있었다. 한평생 교단을 위해 무아봉공으로 살아온 100여 분의 스승도 그렇게 한자리에 세워 놓고 보니 학창시절 졸업사진의 한 장면 같았다.

간혹 줄이 안 맞아 한 명이라도 얼굴이 안 보일라치면 '법호'가 아닌 친근한 그 이름을 불러대며 좌우로 줄을 맞춰 세웠다.

그 분들 중에는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한 제자도 있고, 정산종사의 딸도 있고, 대산종사의 딸도 있었다. 또는 스승과 제자가 퇴임 후 수도원에서 만나 한 지붕 아래 사는 인연도 있었다. 혈연보다 더 오래 함께 살아온 '법 동지'들이니 그들은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후진의 눈에는 원기100년 안에 이 회상에 들어와 그야말로 간고했던 교단 살림을 곳곳에서 일궈준 숨은 '개척자들'이었다.

단체촬영이 끝나고, 배내청소년훈련원에서 오랜만에 올라온 박은국 종사는 제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요청했다. 소나무를 무척 좋아하는 박은국 종사의 뜻에 따라 소나무 정원 아래에서 몇 차례 사진을 찍었다.

모처럼 제자들과의 만남이 흥겨웠던 걸까. 아흔의 나이에도 정복을 입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박은국 종사의 자태가 곱다. 제자들도 신이 나 깔깔대며 어울려 춤을 추는데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이와 같다면 어찌 법이 건네지 않을 수 있을까. 배내청소년수련원을 스스로 점지하고 터를 닦아 반평생을 주재하며 훈련도량, 기도도량으로 일군 박은국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와 어떠한 신맥으로 이어진 걸까, 문득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는 전이창 종사를 찾았다. 대종사 친견제자로서 취재요청을 했더니 극구 사양하며 '상(相)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것처럼, 스승도 후진의 간절한 염원에는 뜻을 굽히고 말았다. 많은 말보다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여래를 향한 구도일념을 챙기라는 수차례의 당부가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스승은 지긋이 바라보며 부촉한다. "바쁜 중에도 안으로 공부해야 한다." 뒤돌아서 조용히 미소 짓게 하는 힘이 스승의 법력이라 생각했다.

최근 들어 "교단에 숨은 도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경산종법사의 법문을 자주 듣는다. 돌아보면 교단 구석구석에서 혈심혈성으로 살아온 숨은 도인, 작은 거인들이 우리네 스승이었다. 낡은 건물 두 채뿐이었던 만덕산성지에 5천일 기도일념으로 초선지 원불당과 훈련원 본관 불사를 이룬 이양신 원로교무는 퇴임 후에도 지리산국제훈련원에서 자원봉사 중이다. 스승의 발자취라도 따라가고픈 6월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