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안 스님

방언공사가 끝나갈 무렵, 사산 오창건을 데리고 부안 변산 월명암을 잠시 다녀온 소태산 대종사는 법인성사를 마친 후 수제자 정산 송규를 불러 새 회상 창립을 위한 준비 계획을 설명하고 "먼저 월명암에 들어가 백학명(白鶴鳴) 선사의 상좌로 있으면서 나를 기다리라. 여러 방면으로 연구는 하되 불경(佛經)은 보지말라"고 당부한다.

정산종사, 월명암을 찾아가니 학명선사가 크게 반기며, 몇가지 성리 문답을 해보고 나서 "네 눈이 참으로 밝다"며 정산종사에게 '명안(明眼)'이라는 불명을 주었다. 송규는 학명선사의 상좌로서 시봉도리를 다하면서도 대종사가 변산에 들어올 날을 기다리며 새 회상 창립을 위한 상념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불경은 보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을 받드느라 불경이 놓여있는 경상(經床)까지도 보지 아니하는 대신성을 가졌다.

이 당시 학명선사 밑에는 여러 선지식이 성장하고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제자가 해안(海眼) 스님이다. 명안과 해안은 자연스레 도반이 되었다. 해안스님(1901∼1974)은 중국 유학을 다녀오고 금산사 내소사 주지와 조실을 지낸 법높은 대선사이다. 열반을 앞두고 맏상좌인 혜산(慧山)에게 "사리(舍利)가 나오더라도 물에 띄어 없애버리고, 비(碑) 같은 건 세울 생각도 말라"고 했다. 그래도 오셨다간 흔적은 남겨야 되지 않겠냐는 제자의 간청에 "굳이 세우려거든 '범부 해안지비(凡夫 海眼之碑)'라 쓰고 뒷면에는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死)'라고만 쓰라."고 했다.

이어 제자들이 열반송을 간청하자, "생사부도처 별유일세계 구의방낙진 정시월명시(生死不到處 別有一世界 垢衣方落盡 正是月明時)"라 번역하면, "생사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 하나의 세계가 따로 있다. 때 묻은 옷을 벗어버리자 비로소 밝은 달 훤할 때로다."

해안스님이 한때의 도반이었던 정산종사가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49종재일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경천정산각령추어(敬薦鼎山覺靈麤語)'라는 제목의 게송(偈頌)을 쓰고 말미에 '선우(禪友) 해안 합장 분향'이라고 적고 있다.

낳되 남이 없고 죽되 죽음이 없기에 무생이면서 낳고 무사이면서 죽습니다(生而無生死而無死 無生而生無死而死) 그러니 음양의 몸이 참입니까 음양을 받지 않는 몸이 참입니까(陰陽身是眞耶 不受陰陽身是眞耶) 흰구름은 푸른산에 걸리지 아니하고 푸른산도 흰구름에 걸리지 않아서(白雲不碍於靑山 靑山無放白雲) 산이 스스로 그러하고 구름도 그러하듯(山自然雲自然) 낳고 죽고 가고옴이 이와같고 거래가 없는것도 또한 그러하지요(生死去來亦如是 無去無來亦如是).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해안선사가 정산종사를 '각령(覺靈)'이라 호칭을 한 대목이다. 견성도인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인증을 한 것이다.

<원불교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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