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봉공으로 서울 누비는 엄마와 아들

▲ 원남교당 배정혜 교도(사진 오른쪽)·손원경 교도.
3대째 이어가는 일원가족의 신앙 유산
원봉공회 노숙인·일용직노동자 공양 봉사

수요일 새벽 4시, 서울 최대의 인력시장 남구로역에 앞치마를 두른 고운 아주머니와 분홍조끼를 입은 듬직한 청년이 나타난다. 따뜻한 국밥을 싣고 온 빨간밥차를 맞이하는 원남교당 배정혜 교도와 손원경 교도. 서둘러 의자를 펴며 손발 척척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엄마와 아들은 어려운 이웃을 찾는 현장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원봉공회의 마스코트다.

신앙심만큼이나 무아봉공정신도 대를 이어 3대째에 이르는 배정혜·손원경 모자. 날 때부터 호적명처럼 법명을 받았고, 평생을 교당에 오가며 지내왔다. 배 교도의 어머니이자 아들 원경의 외조모인 지타원 이진심행(芝陀圓 李眞心行) 교도의 일생에 거친 신앙의 유산 덕분이다. 어머니는 늘 딸의 손을 잡고 "교당이나 교무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교도가 돼라"고 가르쳤고, 배 교도는 그 말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살고 있다.

"제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내세우신 조건이 '교당 다니는 사위'였어요. 그 때 인천교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교전을 받아든 남편이 그러겠다 해서 결국 교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지요."

배 교도에게 신앙적 스승이자 인생의 롤모델인 어머니는 열반 직전까지 "내가 너에게 신앙을 남겼으니, 너도 아이들에게 이 신앙을 유산으로 이어라"고 얘기했다. '법신불 사은님 받드는 사람이 진리에 어긋나게 살면 안된다'며 부질없는 욕심 내거나 기도 한번 허투루 한 적 없는 어머니의 신앙. 그 덕분일까. 남편 성산 손성천 교도는 원기84년 인천교당에서 남동교당을 냈을 때 교도부회장으로 문열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서울로 와서도 한결같은 일원가족으로 살고 있다.

"친정이나 다름없는 도봉교당에 다닐 때 아이들이 자랐고, 교무님, 선배님들께 예쁨도 많이 받았지요. 그 때 봉공활동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던 차에, 원봉공회와 강명권 교무님을 알게 됐어요." 처음엔 간간히 봉공에 참여했던 배 교도 모자는 원경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현장을 찾았다. 원기98년 여름, 1학년이니 으레 또래들처럼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었던 원경에게 이모 배정수 교도가 특별한 제안을 한 것이다.

"이모가 아르바이트 대신 원불교에서 봉사를 하면 그만큼 알바비를 주겠다고 하셨어요. 전에도 몇몇 복지관에서 봉사하면서 좋다는 생각 했었는데, 솔직히 봉사도 하고 돈도 생기고 하니 신나서 시작했지요."

그 길로 엄마와 함께 서울역을 찾은 그는 "처음보는 노숙인보다도 교무와 교도들의 노력과 정성에 놀라고 감동했다"고 회고한다. 가정 500일 기도를 결제하고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도 이모에게 어디서 몇 시간 했는지 말씀드리면 바로 입금이 돼요. 그런데 이제는 돈보다도 보람과 뿌듯함 덕분에 수요일만 되면 얼른 오고 싶어요."

4월 시작된 남구로역 일용직노동자 아침공양도 모자는 선뜻 시작했다. 남자가 귀하고, 젊은 사람은 더 귀한 남구로역 공양은 5시부터 국밥을 퍼주는 새벽일이라 봉사자 모집이 더 어려웠다. "재작년 서울역 공양을 시작한 뒤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분들이었기에 하겠다는 말에 마음을 탁 놓았다"는 강명권 교무의 말대로 그들은 천금보다 귀한 아군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딱 한번 빠졌어요. 딸(손효경)이 중국에 발령이 났는데 가족여행 겸 보러 갔거든요. 그런데 가서 수요일이 되니 원경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놀고 먹는 게 좋은 게 아니네. 어서 밥차 봉사하고 싶다' 라고요. 이제 스물한 살인 아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아, 우리 원경이는 전무출신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들어 부쩍 "강 교무님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는 원경. 그의 별명 '공기청정기'답게 주변을 맑고 밝게 해주는 귀한 기운을 이 교단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수요일은 '봉사하는 날'로 정해져 있어서, 남편도 방해할까봐 전화를 안해요. 새벽에 남구로역 나왔다가 오후에 다시 회관서 밥 싣고 서울역에 가죠. 저녁에 집에 가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데 절로 웃음이 나요. 그래도 저는 엄살도 피우는데, 원경이는 빈말로라도 힘들다 소리를 안 하는 게 기특하지요."

대물림된 신앙으로, 새벽마다 온 가족이 마음 모으는 기도로, 수요일이면 발휘하는 봉공 정신으로 하루하루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배정혜·손원경 모자. 하루종일 놀아도 모자랄 스물한 살의 청춘을 봉공에 쏟으며 이미 차곡차곡 적공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이 교무가 된다면 어머니가 물려주신 신앙을 잘 잇는 것이라는 엄마. 과연 엄마와 이모가 합세하고 아빠가 뒤에서 밀어주는 '아들 전무출신 만들기'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보기만 해도 향기롭고 유쾌한 이 엄마와 아들의 미래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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