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00년과 광복 70주년 민족 통일 염원

▲ 장수왕릉에서 기도하는 정화단원 일행.
2일 06시 여자정화단 실무위원과 일반단원, 원로단원 16인이 인천국제공항에 집결했다. 3박4일 일정 대부분은 항일유적 답사 및 고구려 유적, 백두산 등정으로 이뤄졌다. 일행은 발길 닿는 곳마다 항일 독립투사의 넋을 기리며 성주와 일원상서원문으로 해탈천도를 염원했다. 원불교 100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의 과제가 풀려 하나의 세계를 구현하자는 의미를 담은 천도 기행을 한 것이다. 2일~6일 4박5일 천도 기행을 통해 중국 단동과 집안, 용정에서 만난 독립투사의 삶을 새겨 보았다.

▲ 끊어진 압록강 철교.
압록강 철교를 걷다

중국 단동과 북한의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는 1909년 5월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착공하여 한일강제병합 후 1911년 11월 준공했다. 철교의 중앙에는 단선 철로가 부설되어 있고, 그 양쪽에 인도가 설치된 교량으로 총 길이는 1km가 채 되지 않는 944m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을 목적으로 건설된 압록강 철교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압록강 아리랑〉의 저자 최범산 작가는 "압록강 철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망명했던 독립투사들이 왜놈들의 감시를 피해 가슴을 졸이며 건넜던 분노의 다리였으며, 포승줄에 묶인 채 감옥으로 끌려가던 통한의 다리였다"고 회고했다.

그 통한의 다리에서 정화단원들은 간절한 마음을 모아 심고를 올렸다.

"이 압록강 다리를 지나며 갑자기 당했을 죽음, 얼마나 원통하고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겠습니다. 영가들의 그 심정을 위로하며 천도 축원을 올리나이다. 오직 충정과 신의로써 나라와 민족을 수호하며 희생 순국한 선령들의 영로를 축원하오며 모든 착심과 원한을 풀어 해원 상생의 길로 인도하시와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파수공행하도록 호념하여 주시옵소서."

단동에서 평양까지 220km

단동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맞닿아 북한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도시였다. 평양까지의 거리는 불과 220km이고 서울까지 거리도 420km이다.

단동은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도시다.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를 비롯하여 안창호, 이상룡, 이회영, 김원봉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일투사들이 단동을 거쳐 상해나 만주로 망명했다. 대한독립청년단, 임시정부 안동교통국, 안동임시의사회, 대한독립단, 의열단, 조선혁명군, 한중항일연군 등이 활발하게 항일투쟁을 전개한 곳이다.

이러한 곳이기에 양세정 교무는 정화단원들의 방문에 맞춰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사 제위와 가족 제위 영가'의 49재 특별천도재를 결제한 것이다. 또한 고구려 유적지 방문 일정도 있어 '고구려 충신열사와 일반 유민 제위 영가'의 천도도 겸했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었다면 쉽게 올 수 있는 이곳을 긴 시간 둘러 방문해야 하는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중원대륙에 일원대도 전법사도들이 있어 기도일념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민족적 과제는 하나하나 풀어질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고구려 유적의 도시, 집안

단동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5시간 이동해 집안(集安)에 도착했다. 집안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하고 있다. 철로가 연결되어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집안시는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찬란했던 문화를 꽃 피웠던 고구려의 도읍지인 국내성이 있는 곳으로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광개토대왕비와 능, 장수왕릉, 국내성터, 오호묘, 산성아래 무덤떼 등을 관람했다.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에서 일행은 각각 성주1편으로 영로를 축원했다.

양세정 교무는 "1500년 전 영토를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누었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말발굽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치는 듯하다"며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 전역을 약 700년 동안 지배한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성했던 나라,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나라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고구려 유적지에 우리 조선민족이 조상 대대로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며 "민족적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시켜 나가도록 해야 하고 통일 조국의 한반도는 고구려를 다시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늘 염두에 두고 있는 화두다"고 밝혔다.

▲ 밝게 빛나는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기행 3일째 백두산 서쪽 등산로로 천지에 올랐다. 맑고 쾌청한 하늘은 천지를 있는 그대로 찬연하게 비춰줬다. 천지의 맑은 기운을 흠뻑 받은 일행은 천지 주변에 서서 손을 모았다. 종교행사를 할 수 없어 각자 합장한 채 평화통일과 세계평화, 기원문결어를 기원했다.

4일째는 비가 오는 날이라 백두산 북쪽 등산로가 폐쇄됐다. 6월 초라 비가 오면 천지주변은 얼어붙어 차량운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행은 백두산 지하삼림 일대를 관광했다. 멀리 수해만리(樹海萬里)를 조망하며 성주1편과 일원상서원문을 독송했다. 주변의 관광객들도 모두 숙연하게 독경의식에 협조하기도 했다.

현충일, 용정에서 만난 항일투사

기행 마지막 날, 용정 대성중학교 역사전시관을 방문했다. 20세기 초부터 용정을 중심으로 설립된 연변지역의 조선족사립학교들은 이주민들에게 근대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항일투사를 육성, 민족해방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애국애족의 민족교육을 통해 항일민족의식을 키운 항일투사들과 이주민들의 민족해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에 가담, 중국내 기타 민족들과 함께 광복의 그날까지 지속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민족교육의 선구자들과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인사들의 사진 앞에 마음을 모으며 후진양성을 약속하는 장학금을 기부했다.

역사는 과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호국보훈의 달 6월,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항일 독립투사들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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