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를 지원하며 세웠던 서원을 심고 때마다 간절히 염원했다. 그러던 중 교구 교사모임을 조직할 기회가 왔고, 사무국장의 도움으로 교구 내 교직을 수행하고 있는 교도들의 연락처를 파악하며 하나씩 준비해갔다. 반갑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법회출석만 하거나 출석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드디어 원기93년 10월, 대전충남교구 교사회가 창립됐다.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원불교인, 교육자, 교화자로서 수행담과 인성지도자료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선배교사에게 배우기만 했던 전국교사회훈련과는 다르게 내가 실천했던 진로인성프로그램 실천사례들을 발표하는 기회도 얻었다.

원무 사령 이후 교당에서도 나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중앙을 맡으면서 단장을 보필하는 일부터 단원들과 함께 교화단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때 함께 했던 단원들이 지금도 교당의 주인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또한 교당 교사모임이 목요공부방으로 정비되면서 매주 정전공부, 강연과 함께하는 심신작용처리건, 감각감상 등의 일기중심 마음공부를 진행했다. 참석 교도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공부하는 맛과 깊이가 달랐다. 그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니 나의 성장을 위해서도 쉴 수가 없다는 서원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

당시 마원종 교무님은 그런 내게 힘을 실어 주고자 원기95년부터 어린이법회를 맡겼다. 처음에는 셋째 아이가 워낙 어릴 때라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나 역시 어릴 때 교당 다닌 경험이 현재의 원무 지원을 하게 된 씨앗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청소년교화에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교당 사정으로 부교무가 부재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매주 법회를 주례했고 어린이훈련도 혼자 진행했다.

물론 교무와 청소년분과장의 도움은 있었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은 녹록치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교화에 대한 고민이나 순간순간 부딪히는 문제를 털어놓을 대상이 없음이 크게 아쉬웠다. 그때쯤 남성균 보좌교무가 부임해 왔다. 남 교무는 학생·청년법회를 맡아 주었다. 덕분에 나는 힘들어도 어린이법회는 계속 맡고 싶어 하나하나 묻고 배워가며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가며 법회운영을 하게 됐다.

나중에는 법회뿐 아니라 어린이·학생 연합활동 및 훈련에서도 그동안 교사로서 쌓아온 마음공부지도력이 발휘돼 상대적으로 부족한 교당교화 방법이나 실무적인 부분이 채워졌다. 그 덕분에 파트너십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교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여름·겨울방학 때는 대전 지역과 성지를 중심으로 어린이·학생훈련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진행하면서 결속력은 물론, 형제자매들처럼 돈독해진 청소년들이 법회출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교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언제나 간절히 필요한 순간에 귀한 인연을 내어준 사은에 감사하며 부지런히 보은정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원무활동을 하며 나는 이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을 때가 많다. 아이들의 인성지도가 힘들어 달려온 후배 교사와 함께 고민하여 답을 찾아가는 기쁨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감정코칭을 통한 행복한 교실 만들기 직무연수'에 강사로 초빙됐고, 또한 교도가 아닌 교사들을 대상으로 마음공부를 통한 학급운영사례를 발표하는 기회도 얻었다.

<동대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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