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바르고 화하게 하는 것은 나로부터'

입교 후 변함없는 공부심을 이어온 거제교당 우타원 이도은(86·禹陀圓 李道恩)교도. 빛깔 고운 은발에 편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반겨준 그는 오롯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나이 52세 때 남편이 갑자기 열반했다. 여동생의 소개로 집 근처에 있던 거제교당에서 남편 장례식과 천도재를 지냈고, 다음해인 원기67년부터 교당과 인연을 맺어 현재에 이르렀다.

"천도재를 마친 후 교당에 나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니다보니 친목계도 나가지 않게 됐지요. 교단과 교당 행사는 빠지지 않고 다니게 됐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였지만 입교 후 저녁시간에 이뤄지는 월초기도까지 꾸준히 참석했다. 그렇게 교당에 부지런히 다니던 그는 5년 후 교통사고로 발목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당시 '나는 지은 죄가 없는데 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64장 '하늘은 짓지 않는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나니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다시 마음을 챙겨 목발을 짚고 교당법회에 참석했다. 이후 직장을 그만둔 그는 교당생활에 전념했다. 교당 안팎의 청소는 물론 연탄불 갈기까지 도맡았다. 그는 평소 무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새벽기도를 갈 때는 그 길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거제교당이 신축을 하던 시기,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었던 그는 신축불사 권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평소에 그는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성격이었고 아쉬운 소리는 더더욱 하지 못했다.

"당시 가진 돈은 없고, 옛날 어른들 절 짓는 생각이 나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교당 신축 불사를 권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여해줬습니다. 그때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신심과 공부심이 충만하던 그는 원기79년, 아들을 따라 양산시 물금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곤경에 처했다. 빚을 내서 아파트를 마련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를 냈고, 보상금까지 물어주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빚을 갚아야 할 아들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했고, 치료비와 이자 부담으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부산에 있는 교당을 가기 위해 차비 걱정을 해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당시 물금 집에서 거제교당까지 오려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등 소요시간이 3시간이 넘었어요. 거기다 아들이 입원한 병원까지 들리려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됐지요. 하지만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빼고는 교당 법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교법에 대한 믿음이 철저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빚도 다 갚고 힘들었던 시절은 지났지만, 당시를 생각해보면 그 자신도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감회가 새롭다.

"지금도 물금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교통편이 편리해졌지만, 집에서 출발한 지 1시간30분이 지나면 교당에 도착합니다. 길이 멀어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빨리 출발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미숙했던 한글, 〈교전〉공부로 한문까지 능숙해져


그의 일과는 어김없이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벽5시부터 6시까지 좌선을 한다. 다시 7시까지 원백성업기도를 한 뒤 오전에는 일원상서원문 10독, 낮에는 법문사경, 저녁에는 다시 일원상서원문 33독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법문사경도 처음에는 빈 공간이 있는 노트를 찾아 하다가 정식으로 사경노트를 구입해 한 것이 노트 9권이 완성됐다. 현재는 〈대산종사법어〉를 적고 있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는 그는 부산울산교구 원로법사단 모임인 선오회 활동과 훈련에도 빠지지 않는다. 선오회원 모두를 교단의 선진과 원로들로 받들며 그들에게서 큰 힘과 위안을 받고 있다. 한글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교전〉을 보면서 한글과 한문에 능숙해졌다. 반야심경의 한자를 알기 위해 100번을 적기도 했다. 〈교전〉에 나오는 한자가 궁금해 옥편과 돋보기를 놓고 공부도 했다.

"〈대종경〉 15품과 〈정산종사 법어〉 15편의 순서를 외우니 〈교전〉보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교전〉은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의미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교당을 다니다 보니 평소 모르던 것이 차차 알아졌습니다."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성격도 차차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정산종사 법어〉 응기편 40장 말씀에 따라 언제나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화합하려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네며 친근감 있게 다가섭니다. 교당에 다니면서 과보를 어떻게 지어서 받게 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요."

여러 교무님과 교도들의 성원 덕분에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그는 거제교당 1대 조영진 교무를 비롯해 김정덕, 라문정, 김도진, 소종현, 이학신, 홍귀연, 김덕인, 현재의 강진영 교무까지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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