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의 반을 원무로서 임했다. 원무 사령을 받기 전에도 마음공부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가장 큰 행복이자 남다른 비법으로 여기며 살았다. 교직을 신앙과 수행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교도이자 교육자로 살려 노력했다.

원무가 되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럼에도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내가 만나는 이들이 교화 대상으로 보이는 마음. 나의 공부와 수행이 곧 아이들, 학부모, 동료교사를 원만하게 만나고 이 법을 알려내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무장이 됐다는 점이다. 입교를 하고, 법회 출석하는 인연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상담하는 모든 순간에 나는 교화자다.

〈정전〉의 한 구절을 풀어내며 사실적으로 만나고, 〈대종경〉 한 단락을 예화로 들어 세정을 헤아리며 스스로의 마음 작용을 살피게 한다. 물론 그 순간마다 내 마음으로도 치열하게 공부한다. 아이들에게 마음공부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내가 공부하는 그대로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품어낼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감정코칭, 학습코칭, 진로코칭 등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혹은 잠깐만 접하기만 하더라도 실전에 적용하는 일이 다른 교사들보다 능하다고 말하면 겸손하지 못한 마음일까. 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공부가, 이 교법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1기부터 16기까지, 마음공부로 함께 했던 제자들이 원무의 보람 1호다. 가장 힘든 순간에 고민을 나누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부모자식처럼 기쁨을 나눈다. 초창기 아이들은 어느새 진로를 결정하는 일이나 직장 내 업무, 인간관계 등에서 오는 경계를 화두로 만난다.

군복무 중인 아이들은 군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고3 수험생을 거치는 때는 새벽 2시에 통화나 문자로 문답하며 만나기도 한다. 사춘기를 격하게 겪느라 힘겨운 일명, '중딩'들의 삶도 내게는 익숙한 일상이다. "선생님도 그런 경계가 있었단다"에서 "몇 기 어떤 선배도 그 때 그랬어"가 되니 무궁무진한 사례에 바탕하여 상담, 문답하는 깊이와 재미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작년부터 학부모 공부모임을 해보고 있다. 아이들 인성지도에 만족하고, 담임이 끝난 후에도 가끔 상담을 요청하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지만 공부모임을 시작하기까지는 나름 고민이 컸다. 그럼에도 선배 원무님들 이야기를 들으며 꼭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일단 시작해보았다. 아이들과 달리 무언가를 더 채워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음이 찾아지니 편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늘 해오던 대로 그 때마다의 마음의 원리를 찾게 하고, 그 마음을 공부하는 용심법으로 만나고 있다. 유무념 공부 상황을 매일 문자로 피드백 하는 어머님도 계신다.

최근 몇 년, 건강이 좋지 않아 어린이법회와 공부방을 쉬고 있다. 교당에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지만 또 그런 시간들이 엄마, 교사, 원무 등 여러 이름으로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부족함을 채우는 계기가 됨을 알아지니 그대로 감사하다.

몇 달 전부터는 어린이법회를 돕는 청년들 몇 명과 정전공부와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교화 사례도 나누고, 지도 경험도 전하다보니 교리 해석이나 마음공부지도법에 대한 나의 공부 정도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됐다. 한 순간도 은혜 아님이 없는, 진리의 선물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 때와 다를 바가 없이 알아진다.

하고 있어도 한다는 마음 없이, 하지 않아도 안 함이 없는 공부를 해나가길 심고 올린다. 다른 원무님들에 비해 크게 드러날 만한 교화 실적도 없고, 신앙과 수행 또한 항상 부족하지만 내가 하는 별 거 아닌 이 일은 누가 대신하지 못하는, 나만의 서원이기에 나의 박자와 빠르기로 나아가려 한다. 시절인연 따라 사은이 내어주는 인연과 숙제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한다.

<동대전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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