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매개로 교법 정신 구현하자'

'원문화의 밤'에 초청된 홍석현 JTBC·중앙일보(법명 석원·원남교당) 회장은 "문화시대에 문화를 소통의 매개체로 삼아 교법정신을 구현해 가자"고 역설했다.
16일, 서울클럽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홍 회장은 '스타 교무의 발굴, 문화에 바탕한 새로운 교화, IT 접목한 확장성, 관점의 균형' 등을 이야기하며 원불교 문화가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원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한 홍 회장은 주미대사 출신의 행정가, CU를 창업한 CEO,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로서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이번 주 기자가 만난 사람은 홍석현 회장의 특강을 인터뷰 형식으로 바꿔 지면에 싣는다.

▲ 홍석현 JTBC·중앙일보 회장은 탈권위주의 젊은 세대 교화를 화두로 삼으라고 말했다.
- 21세기 문화인은 누구인가
처칠이나 아이젠하워, 맥아더 등 위대한 정치인, 전쟁 영웅의 시대는 지났다. 영웅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영웅인 문화인이 등장했다. 21세기는 위대한 종교인의 시대도 아니다. 현 시대는 인지가 발달해 대단한 인물이 아니면 대중을 압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문화인은 세계를 압도할 만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피카소 이후 가장 존경받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이제 영웅은 없다. 문화인이 영웅이다'고 말했다. 문화인이 철학을 이야기하고 종교를 이야기하고 정치를 이야기하면 다 듣는 시대다. 나는 문화인의 범주를 스포츠, 대중가수 등을 포함해서 말하고 싶다.

단군 이래 전 세계를 움직인 조선인은 가수 '싸이'라고 생각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25억 뷰를 생성할 정도(세계인구의 4/1)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스포츠 스타 중 메시, 타이거우즈, 블래터 등은 한 나라의 대통령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처럼 존경과 권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 종교인의 권위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설법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다 나온다. 이제는 스타 종교인들의 시대다.

-그럼 왜 문화가 정치·군사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선 과학문명의 발달이 큰 원인이다. IT 혁명과 SNS 등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반 지식이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가 됐다. 또한 생사문제 등 신비주의적 영역도 종교인만 국한하지 않는다. 뒷방에서 이뤄지는 시대가 지나면서 모든 것이 투명한 세상이 된 것이다. 중세의 문화라는 것은 종교에 예속된 결과물이었다. 종교 속에 건축, 회화, 조각 등의 예술이 나왔다. 교회는 중세 예술의 가장 큰 고객이면서 권력자였다. 한국의 경우는 고려시대 불교가 권력자이자 가장 큰 고객이었다. 이제는 인간영성의 문제를 종교인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건축, 음악 등에서 모두 이야기한다. 예전에 가르침을 받았던 이화여대 김흥호 교수(목사)는 '서양문명은 자연의 시대 1천년, 신(종교)의 시대 1천년,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시대가 열렸다'고 설파했다. 결국 과학문명이 신으로부터 자유를 줬고, 문화의 시대를 열게끔 한 것이다.

-그렇다면 회장님이 생각하는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를 넓게 정의하고 싶다. 문화란 우리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가 뿜어내는 모든 양태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싶다. 인류의 겉모습은 하나하나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서로 연결된 존재다. 여기에서 발현된 모든 것이 문화다. 성리학에서 주자(朱子)는 '성즉리(性卽理)'라고 했고, 왕양명(王陽明)은 '심즉리(心卽理)'라고 했다. 나는 '문화즉리(理)'라고 표현해 본다. 문화라는 것은 뿌리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 문화시대 행복론은 어떤 것인가
우리 모두는 귀한 인연법에 따라 생을 받았다. 생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가꿔 가길 원한다. 멋과 맛, 흥 등을 행복하게 향유하고자 요구하고 있다. 모든 존재의 뿌리로부터 소리없는 아우성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싶다'는 목소리일 것이다. 달라이라마 〈행복론〉의 법문을 보면 쉽고 간단하다. 메시지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행복도 소중하다.' '남에게 친절해라. 한번 웃어줘라.' 등이다. 고통의 바다(현실) 속에 살면서 평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겉으로 대통령, 재벌, 대부호 등으로 구별돼 있지만 큰 사람일수록 애환이 더 많다. 우리 불자들의 수행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실천하면 행복해진다. 종교들의 표현은 다르지만 하나는 지혜, 다른 하나는 자비심의 양 기둥으로 행복을 만들어 가자.

- 부처라면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까
인터넷신문 허핑턴포스트지의 요청을 받고 칼럼을 썼다. 첫 주제가 '부처라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설정한 글 제목부터 세계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폭발적이었다. 과거시대는 장군의 시대, 정치인의 시대였다. 그래서 미국의 키신저는 국제 문제를 '힘의 균형'으로 풀어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부처님이 계시다면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까. 관점의 균형(Balance of Perspective)으로 푸실 것 같다. 한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다른 관점을 존중하며 풀 것이다. 서양은 체스(장기)적 관점이다. 왕을 잡으면 끝난다. 하지만 동양은 바둑문화다. 왕을 잡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집 대 100집의 차이, 즉 승자독식이 아니라 서로 상생하려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 결국 하나의 세계를 주장하는 데
현대사회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가 다 연결됐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느 나라의 국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공유 동시대의 아이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싸이시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다.

하나로 연결된 세상, 문화의 시대는 세계 어느 종교보다 우리 원불교가 강조해 왔다. 일원세계건설이나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동원도리·동기연계·동척사업), 대산종사의 종교연합(UR)운동 등이 그 예이다. 대산종사는 유엔보다 더 평화롭고 상생의 시대를 이끌 수 있도록 UR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문화시대를 예견한 말씀이면서 후천시대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보여준 운동이다. 대단한 예지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다름 속에 담긴 정신연대, 문화시대의 조화와 상생을 열어가자는 것이다. '달이 일천강에 비춘다'(성가107장 심월송)는 표현이 있다. 대종사께서 전해주신 달을 우리 각자는 품고 있다. 각자가 품고 있는 달이 이웃인 일천강에 어떻게 비춰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대종사께서 품은 달은 생각할수록 위대한 가르침이다. 가르침을 너무 쉽게 풀어놔서 그 쉬움을 이해하는데 너무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한다. 세계종교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성직자의 동등한 권리, 지자본위 사상,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교법에 신비주의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 신비주의를 배제했다는 뜻은 무엇인가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원정각의 대도인이다. 그렇지만 교법에 신비주의를 타파했다. 조직을 만들고, 체계적이면서 과학주의 정신에 바탕해 종교혁신을 이끌었다. 내가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원불교 초기경전을 많이 읽었다. 초기경전에는 현재의 〈교전〉에 포함이 안 된 방대한 분량의 법문 자료들이 많았다. 이 법문들을 접하면서 대종사님의 큰 메시지를 읽었다. 후세 제자들이 혹시 신비주의에 빠질까 걱정이 돼 〈교전〉에서 빼버린 것이다. 신비주의가 큰 세력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신비주의 배제가 세계종교, 과학시대에 맞는 종교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 창립정신을 계승하려면
소태산 대종사께서 오만년 대운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 하지만 이것은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흉흉할수록 우리 교도들이 노력해서 훈훈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문화를 소통의 매개로 삼아 교법정신을 구현해 갔으면 좋겠다. 일천강에 조용히 깃드는 부처님의 은은한 달빛처럼 우리의 삶 속에 혹은 부지불식간에 교법의 정신이 배어나게 하자. 평범한 활동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교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가 출가교도가 합력해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 100년은 대종사님 덕분에 살아왔다. 이후에는 대종사님의 정신을 살려내려는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할 시기다. 종교에 너무 사로잡혀 버리면 종교 색채 때문에 젊은 세대가 싫어한다. 탈권위주의, 과학주의에 입각한 공감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사로잡을지를 연마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화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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