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 43년, 교회 집사활동
원기83년 참 진리 여행시작

▲ 최선각 원무
나는 기독교 모태신앙으로 43년을 직장 안에서 교회 집사와 선교사로서 활동했다.

자신 전도, 가족 전도, 친인척 전도로 당하는 곳마다 전도 사업하는 재미로 살았다. 어린이, 학생, 청년, 일반 등 모두를 교회로 인도하는 열성교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세상의 절망과 큰 경계를 만났다. 헤쳐 나갈 방법을 모르고 헤매던 중 인과를 알게 됐고, 업을 이해하고 정업을 이해하니 종교적 진리의 신앙을 다시 찾게 됐다.

그렇게 원불교를 알게 되면서 일체 숙제들이 진리적 종교의 신앙문에서 찾게 되었고, 사실적 도덕 훈련으로 그동안 살아온 모든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었는지를 알았다. 깊은 후회를 하고 나 자신을 미워도 해 보았지만 너무도 긴긴 43년을 허송세월로 살아왔음을 알게 됐다. 속 깊은 참회로 참 진리 법신불 일원상 앞에 무릎 꿇고 고백하니 지금이라도 남은 생을 통하여 어리석던 43년을 극복하려면 두 배 세 배로 더 정진하고 적공하라는 내 안의 고백이 있었다. 원기83년(1998) 4월20일 새벽4시쯤 성탑에서 대종사를 친견한 후 송대 기도실에서 참 진리 여행을 시작했다.

이후 진리의 샘인 〈원불교전서〉를 선물 받고 바로 완독했다. 전서 내용을 거의 이해한 다음 그 해 12월15일에 북일교당 서화원 교도의 인도로 입교했다. 나는 선각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나는 당시 송선만 교무님과 문답감정 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2년 후 원기85년에 6단 중앙으로 진급했다. 이듬해는 단장으로 초고속 진급하여 교회 선교사 역할을 원불교 교화에 접목시켰다. 참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하며 이 사실을 알리고 훈련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증명해 주고 싶었다.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교도들은 원불교에 미친 사람이 왔다며 시기와 질투, 모함으로 따돌림을 했다.

새로 부임한 문국선 교무는 내가 상처 받을까 봐 대중 앞에서 칭찬과 격려를 하며 도와주었다. 그 사이 교당 신입교도훈련을 전담하게 됐고, 매주 일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교당 정문에서 교도들을 맞으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교당에 없던 문화가 생긴 것이다. 비평만 하던 교도들이 서서히 법회를 안내하는 봉사단으로 정착되었고, 교도 한 분 한 분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안내조가 이제는 마당에서 2인, 대각전 입구에서 1인, 대각전 안에서 1인으로 조직돼 교도들을 맞이한다.

원기87년 7단 단장으로 진급하고 신입교도를 한 단 늘렸다. 2개단을 늘려 11단이 되니 나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도가 되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미래 교화의 희망인 교화단에 대해 교도들은 관심이 적었다. 교화대불공의 원천수인 교화단 중앙 단장을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일선 교당 교화를 책임지고 온 교무로서 가슴이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나는 교무님의 사무여한의 기도를 듣고 나라도 거부하지 말고 모든 일에 "예!"하고 대답하기로 했다. 참 교도라는 자부심과 참 진리 속에서 전법을 행하는 나를 보며 교당에서는 차차 나에게 단장과 교화기획분과장, 교구에서는 교화분과 일반교화팀장, 교화훈련부에서는 일반교화지원 직무를 맡겼다. 항상 감사기도하고 활불의 삶으로 살던 내게 원기93년 문국선 교무는 원무지원을 권했고, 나는 원기93년 4월1일부터 전법 사도로서의 원무의 삶을 시작했다.

<북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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