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6

▲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기념이나 추모라는 단어를 들으면, 독재 국가와 정권에 의해 세워진 수많은 거대한 기념비들이 떠오르는가하면, 마야 린(Maya Lyn)의 '베트남 참전용사 메모리얼(Vietnam Veterans Memorial)'나 '9.11 메모리얼(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처럼 반기념비적 공간도 떠오른다.

한쪽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의 가치관을 반영한 토템이라면, 다른 한쪽은 희생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한쪽이 시스템적 학습이라면, 다른 쪽은 내면적 반성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자아 사이의 기념, 추모는 불가능할까?

독일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Memorial for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 있다. 유대인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한 이 공간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다.

베를린 중심의 무려 1만9천 제곱미터의 땅에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2711개의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가득하다. 2.3미터 길이에 0.95미터 폭의 네모난 돌덩어리들은, 위치에 따라 높이가 0에서 4.7미터까지 변하며 54칸에 86열로 나란히 줄을 서서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그 사이를 0.95미터 폭의 길들이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른다.

공간 어디에도 이 공간의 용도를 알려주는 글이나 표지판은 없다. 유일한 표지판은 대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지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뿐이다. 건축가는 박물관뿐 아니라, 이 공간의 용도를 알리는 어떤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높이가 변하며, 0.5도에서 2도 사이로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는 '묘석(Stele)'들 사이를 한참 오가다 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헛갈리기 시작하고, 잠시 멈춰 거대한 회색의 면을 물끄러미 바라고 있으면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묻게 된다. 곧 어느새 내가 어디에 있는지의 질문은 공간적 위치에서 시간적 위치로, 다시 사회적 위치로의 질문으로 바뀌게 되고, 궁극에는 내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한다.

아이젠만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종종 그 추상적 형태와 공간으로 인해, 유대인 학살의 책임과 죄책감을 구체적으로 대면하게 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길을 잃게 하는 경험은 독일 국민이 우연히 '범죄'를 방임하게 되었다는 면죄부를 주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듣는다.

하지만 그 엄청난 범죄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소거된 공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아와 타자를 구축하려 애쓰게 되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주체적 자아와 타자적 자아 사이의 엄청난 정동(情動, affect)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정동은 엄청난 힘으로 새로운 행동, 새로운 감각, 새로운 사유를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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