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형진 교무 /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의 말이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장애인을 사랑하고자 노력한 일이다. 그 전에는 장애인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만나게 된 장애인들을 보면 복도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친구, 아무에게나 침을 뱉는 친구 등 '내가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은 달라졌는데 나를 변화시킨 사람은 장애아동들의 보호자였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나에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불쌍하게만 보는 장애인들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을 보면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게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부모의 마음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니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장애인들을 점점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니 장애인에 대해 알아가게 됐고, 이제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장애인과 관련된 부분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됐다.

(신체)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시설 몇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엘리베이터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경사로, 그마저도 없다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리프트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턱없는 문이 필요하다.

나는 가끔 우리 원불교 건물 중에 장애인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턱없는 교당은 얼마나 될까 생각을 본다. 정확한 수는 모르겠으나 10%정도나 될까 싶다. 총부를 생각해 봐도 기념관, 법은관 2층은 올라갈 수 없고, 특히 기념관은 휠체어가 들어가도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통로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원불교에서는 장애인들을 교화할 기본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백번 양보해서 시설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마음은 장애인을 향해 얼마나 열려 있을까? 장애인을 교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해본 교역자가 얼마나 될지 물어보고 싶다. 아니 우리 모두는 자문해야 할 것이다.

이웃종교만 보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하루는 지역의 모 성당에서 전화가 왔다. 성당의 복지 분과장 아무개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들이 자원봉사를 나가고 있는 장애인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고 조치를 취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이 업무를 처리하며 나의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이 성당에서는 장애인 가정으로 자원봉사도 다니는구나! 우리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원불교에서는, 우리 교당들은 과연 대사회활동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규모는 다르겠지만 각 교당마다 교화단이나 분과 형식으로 봉공, 교화, 청소년 등 교화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결국 이 활동은 우리 집안 활동일 뿐이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차치하고 교당 근처 이웃들과 얼마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 부족하고 종교인들인 우리의 대사회 활동이 극히 미미한 가운데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싶다. "장애인이 행복한 세상이 정말 행복한 세상이다."

사회적 손길이 가장 적게 가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대산종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부처님의 오안(五眼)을 설해 주며, 부처의 심안을 얻은 성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전했다.

우리 교당 교무님들도 설교 시간에 장애인들을 위한 이야기를 보다 진정성 있게 설해 주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은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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