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기독교인로서의 삶은 절대 신앙이었고, 나의 마음세계에 원불교가 창립되고부터는 43년 동안 잃어버린 참 나를 찾게 됐다. 그것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진아실현(眞我實現)의 기회를 얻게 된 거룩한 선택이었다.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명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깨달은 나는 1.5평 부스의 나의 일터를 '여실지(如實智, 원광대학교 캠퍼스 내 구둣방)'라는 간판을 달고 개방했다. 내부는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어 마음관련 책부터 지도자·성공·경제·철학·위인전 등을 비치했다. 오전7시에 시작해 오후5시반에 퇴근하면, 저녁6시~9시 병원 순교업무(기도, 상담)에 들어간다.

원기33년(1948) 7월16일에 창립된 구둣방은 외가 원두막처럼 누구나 마음 편히 오갈 수 있는 곳이다. 67년의 역사를 기리며 재창립의 마음으로 여실지를 마음나눔터로 운영하여 원불교 동아리와 법인정신 문화원을 활성화하고 있다. 여실지의 마음나눔은 학생 동포를 오직 섬김으로 모셔 일일 평균 30~40인이 다녀간다.
그렇게 인연 맺은 학생 동포 중에는 집중적으로 챙기는 멘티들이 있다. 이들에게 늘 상담을 하며 교법으로 인도하고 있다. 맞춤식 소교재를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개발하여 제작 보급하고 있다. 그러면 스스로 훈련에 동참하여 소그룹별로 상주선원에서 교리훈련을 나고, 해년마다 열리는 변산원광선원 청년합동훈련에도 동참하게 된다. 주변교당과도 연계하여 청년교도활동을 잘할 수 있게 연결한다. 그렇게 관리를 받은 학생들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원불교학과 사람사랑위원회 활동(대학로 청소 등)에 동참시킨다. 이렇듯 곳곳에서 교화대불공의 위력이 증명되고, 상 없이 흔적 없이 밖으로 미래로 교화해 가는 재미에 의미 있는 결실도 맺게 된다.

여실지 활동 결과로 섬기고, 받들고 보살피던 학생 청년들이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여 원광대학교 휴마니타스 장학생으로 선발돼 4명(김서원, 배한별, 김현수, 도은향)이 4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중 3명은 내가 입교연원이 됐고, 도은향 학생은 세계대학생토론대회에서 서울 명문대 학생들과 경주해 4위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이는 평소 갈고 닦은 일상수행의 요법 1~3조의 공부와 상주선원 교무님의 마음공부 지도가 큰 원동력이 됐다.

나에게 있어 익산성지와 원광대학교는 곳곳이 훈련 도량이다. 상시훈련지로서의 여실지, 정기훈련지로서의 동아리방, 교화단 훈련장인 수목원, 영성훈련장인 송대, 행선의 정토 익산성지의 대각전과 성탑 등. 모든 곳이 교화대불공장이 된다. 또한 교당에서는 교화단 단장을 맡아 주2회 이상 단원들에게 법문문자를 보내고, 새벽마다 기도 올리는 송대법인기도의 기원이 된다. 신입교도가 들어오면 나의 교화수첩에 영순위로 등록이 되고, 주 1회 안부전화를 하면 원불교에 대한 궁금했던 점을 편하게 물어온다.

일요예회 때는 오전 8시30분에 도착해 법회 시작 전 1시간 반 동안 주보 접기, 청수 올리기, 불단과 마이크 점검을 하고, 대각전에서 교도들과 인사 나누고 성가를 부른다. 이 모든 것은 교도들을 받들고 섬기며 보살피는 전법사도로서의 참 수행 참 공부인의 사명임을 안다. 그리고 상 없이 흔적 없이 교화하는 원무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원무 최선각은 교화 최전선에서 항상 브레이크 없는 신(新)나고, 신(神)나며, 신(信)나는 새 회상 불국토 건설의 주역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북일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