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대중의 민주주의 방식에서 탄생하다

먼저 〈금강경〉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게 생각한다.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교단의 선진으로서 재가출가 교도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용기를 내게 되었다.

〈금강경〉을 지면을 통해 강의하게 된 동기는 첫째, 연원경이라는 점이다.
원불교에서는 불교의 핵심 교리를 이어가고 있다.

원불교 특히 대승정신을 표방하고 나가고 있는데 불교의 대승 사상의 핵심을 〈금강경〉이라고 볼 때 우리 교단과 상당하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근본과 근원을 알아야 시대화에 있어서 새로운 정신을 창조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본과 근원을 찾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근본정신은 지키되 운영에 있어서는 시대에 맞는 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금강경〉은 근본을 잘 밝혀 놓은 경전이다. 강해를 하면서 〈금강경〉의 정신을 어떻게 시대에 맞게 활용할 것인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소태산 대종사의 수기 경전이라는 점이다. 〈대종경〉 서품 2장에서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시다가 〈금강경〉을 보시고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였고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가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금강경〉은 원불교인들이 공부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금강경〉은

원불교 연원경 대승 정신과 사상 담겨

공부할 충분한 가치 있어

 


 

〈금강경〉 본론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불경의 결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과정을 점검하면 우리가 금강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있을 것이다.

불경 결집의 시대적 배경

석가모니 부처님 제세 시에는 기록 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유일한 길은 외워서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확한 기록 문화가 없이 외워서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보니 잘못 전달되는 부분도 있고 본래 뜻이 곡해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부처님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기가 매우 어려웠다.
더구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이러한 문제는 더 심해져 내외로 많은 문제점에 부딪치게 되었다.

교단이 봉착하게 된 위기

먼저 내적인 문제로는 제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탈성을 들 수 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비탄에 빠졌으나 과거의 습이 많이 남아있던 많은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옴짝달싹 조차 할 수 없었던 절대적 진리와 권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일탈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 스바닷다라는 제자는 비탄에 빠진 제자들을 향해 "조금도 슬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들은 드디어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하는 석존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하고 소리쳤다.

이 말을 들은 마하가섭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교단이 뿔뿔이 흩어질 것이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부처님의 정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많은 우려를 했다.

외적문제로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고래의 힌두적 사고방식이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과 서로 마찰을 일으켰다.

제자들이 불법을 전하는 과정에서 힌두적 사고에 젖은 인도인을 설득하고자 그들의 배경과 지식을 활용하면서 빚어지는 문제들이었다.
이러한 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글자화 된 부처님의 법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하가섭 중심의 불경 결집

시기는 BC 485년 수제자인 마하가섭의 주재로 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전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제1차 경전 결집이다.

피파라굴에서 수제자인 마하가섭이 회의를 소집하고 사회를 보았다. 먼저 우팔라가 지켜야 할 계율을 암송하고 아난다가 부처님 가르침인 경을 암송하면 참석한 모든 제자들이 내용이 맞음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여 경으로 확정 지었다.

이러한 1차 결집의 특징을 살펴보면 ①경과 율을 암송하고 대중이 승인한 것으로 최초로 불경 형성의 상황이 모인 대중이 민주주의 방식으로 승인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것으로 등송(等誦)하는 형태로써 불경은 공동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②암송의 진실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물질에 의존하지 않을수록 기억력이나 정신력이 아주 강화된다. 당시에도 불멸의 4개월 뒤에 결집이 이뤄졌기 때문에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컴퓨터와 같이 정확하고 진실 되게 결집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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