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균 교무
원기90년 1월2일은 나에게는 뜻밖의 날이었다. 경찰들이 지키는 경비 초소를 지나 2번의 육중한 문을 거쳐 들어간 곳은 '북한이탈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곳은 북한이탈 주민들이 남한에 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2주간 취적(就籍) 및 남한 정착 교육을 받는 곳이다. 나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학교 운영 실무자 자격으로 개교 전 탈북청소년의 상황과 추후 학교 설립 후 운영 방향에 대한 모색을 위해 청소년을 교육하고 있는 '하나둘학교'에 상근하게 되었다.

어릴 적 반공교육을 받았던 내가 생각하는 북한 사람들과 처음 대면한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고 선한 모습의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1년 동안 머무는 동안 북한에서 학습 내용, 아이들의 심리 상황, 학교 운영에 접목시켜야 할 의도된 다양한 활동을 점검했다.

그중 피부에 와 닿았던 것 하나가 진로 결정이었다.

"너 하나원 퇴소하면 어떻게 할래?"
"애~~ 선생님도… 대학 가야죠."

"어느 대학?"
"아무리 못해도 연·고대는 가야죠."

"연·고대? 거긴 남한의 아이들도 들어가기 쉽지 않아."
"한 일 년 이 악물고 하면 그까짓 것 못하겠어요?"

이 아이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력 문제를 풀고 있었다.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적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 꿈의 실현 가능성은 70%나 됐다. 모든 대학에서 특례 입학을 통해 탈북청소년들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북청소년들의 대학 졸업률은 5%가 채 되지 못했고, 결국 개인에게는 좌절과 국가에게는 세금 낭비의 멍애를 갖게 됐다.

원기91년(2006) 개교를 하면서 아이들의 진로에 더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남이 간다고 가는 대학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없이 취업 현장으로 가라고 하는 것도 무책임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직업교육 활동을 통한 자격증 취득이었다.

분명 열악한 환경이었건만 아이들의 자격 취득을 위해 학교에 제과제빵 시설과 피부미용 관리실을 두어 별도의 수업을 진행시켰다. 여건이 어려운 과목은 위탁도 보내고 인근 학교와 MOU를 통해 실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본인들의 역량을 살릴 수 있게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청소년들의 '진로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각 학교에 진로진학상담교사를 배치하게 됐다. 나도 1년간 연수를 받고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을 취득 후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에 같이 하게 됐다.

자라온 환경과 남한에 오게 된 계기, 그리고 남한에서 살아가는 환경이 각각 다른 아이들에게 가끔 학교의 울타리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남한에 아무런 가족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무연고) 한 아이의 최대 목표는 빨리 돈을 벌어 북에 있는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자 했던 이 아이에게 다육 식물을 보여주며,"비록 가지가 부러져 금방 죽을 것 같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의 원천을 가지고 뿌리를 내리는 것 봐. 너도 그래. 비록 지금은 가족과 떨어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너 자신이 가지는 존엄한 생명력을 믿고 한 번 더 노력해 보자"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던 이 아이는 피부미용에 관심을 갖고 자격증의 취득해 현재는 졸업 후 취업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개교 후 2개 반을 운영하던 직업교육 활동은 현재 자격증 취득을 위한 8개 교과 이외에 정서 함양을 위한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1인 1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노력한 결과 연인원 102명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격증 그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더 큰 무대로 나서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최고인 자리가 아니라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성장 발전 가능한 곳을 찾아라. 내가 직장을 찾지 말고 직장이 나를 찾을 실력을 갖추어라. 자아 성장의 단계를 넘어 사회 국가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해라.'

<한겨레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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