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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을 찾아서 / 전북교구 산외교당
교당을 찾아서 / 전북교구 산외교당
  • 최지현 기자
  • 승인 2015.07.17
  • 호수 17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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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 출석률 5배 증가, 작지만 강한 도량
▲ 저녁식사도 거른 채 법회에 참석한 산외교당 교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성가를 부르고 있다.

"우리우리 은혜 속에 이렇게 만났네~ 우리우리 사랑 속에 이렇게 만났네." 여름의 긴-해가 채 지지않은 6일 저녁, 교당을 찾은 법동지들을 맞이하는 교도들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밝고 명랑하다. 작지만 훈훈하고 생동감 넘치는 전북교구 산외교당 법회는 월요일 오후7시 성가를 제창하며 힘차게 시작된다.

교화의 저변확대 꿈꾼 '농촌교당'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405-1에 위치한 산외교당은 원기66년 초대 탁혜진 교무가 부임했고, 그 뒤 최규원 교무가 부임해 대지 819㎡, 건평 370㎡로 1층은 어린이집, 2층은 법당과 생활관을 갖추고 봉불식을 가졌다. 지역 젊은이들의 안착과 간접교화의 장을 확대하기 위한 어린이집 운영을 필두로, 학생회 결성으로 교화의 발판을 마련한 데 이어 어린이회, 청년회 결성을 통해 교화의 저변확대를 꾀했다. 그러나 1980~9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농촌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났고, 산외교당 역시 바쁜 농촌일과 젊은 층의 도시이주, 인구감소로 법회 출석자 수가 평균 3~4명으로 줄었다.

김윤관 교도는 "30여 년 전에는 입교한 교도들이 목록에 250명 정도였다. 초창기 때 법회를 볼 장소가 없어서 밖이나 가정집 한 방을 빌려 30~40명씩 앉아서 법회를 봤다. 그래도 좋았다. 교리가 좋고 법 공부가 좋았다. 그러다 15~16년 전부터 법회 출석인원이 줄기 시작했다. 적을 때는 단 2명이 출석하는 게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황만심행 교도부회장은 "사람이 없으니 법회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교무님마저 떠나시고 칠보교당과 합병을 한다는 소문까지 돌자 '더 이상 산외교당에서는 법회를 볼 수 없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포기에까지 이르렀던 산외교당에 원기99년 새로운 바람이 분다.

퇴임 후 찾은 산외교당, '새 시작'

원기98년 12월 원로수도원에서 설명회가 열렸다. 원기92년 퇴임 후 수도원에서 오롯이 6년을 보내왔던 이묘심 원로교무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수도원에서 설명회를 하는데 교화부원장이 젊은 교무가 부족해서 교무들을 배치시킬 수가 없으니 수도원 어른들이 교당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했다. 내가 70대 초반만 됐어도 생각할 것도 없이 교화하러 갔을 텐데 퇴임 후 6년이나 지난 후라 망설여졌다. 마음을 먹고 교화지로 나가겠다 했는데 인사이동이 끝났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인사이동이 잘 이뤄졌나보다고 생각하고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북교구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회상은 이어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산외교당이 비어 있는데 갈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망설이는 나에게 한번 직접 가서 둘러보고 결정을 하라고 했다. 교구에서 보내온 봉고차를 타고 도착한 산외교당은 너무나 어설펐다. 보일러도 없고 온수통도 없어서 겨울인데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곳을 놔두고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산외로 가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원기99년 이묘심 교무는 산외교당에 부임했다. 그 당시 일요법회 출석인원은 평균 3~5명. 이 교무는 잠자는 교도들의 집에 방문했지만 농사일로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서 교당 명부를 보며 일일이 전화순교를 하기 시작했다.

김광길 교도는 "30여 년 전 입교를 하고 한동안 법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교무님이 오셔서는 지극정성으로 전화를 하셨다. 교무님의 노력에 '우리가 복을 지어야 하는데 연로하신 교무님이 어찌 우리에게 복을 지어 주시네'라는 생각이 들어 법회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 원로교무는 교당 활성화를 위해 단과 임원을 재편성했다. 당시 젊은 층이었던 최상욱 교도를 회장으로 선출, 3개의 단을 조직하는 등 체계적인 책임부여를 통한 교화활성화를 꾀했다. 그는 교당 재정비에도 힘을 쏟았다. 보일러를 설치해 따뜻한 물을 공급했고, 허리가 불편한 이들을 위해 의자를 마련했다.

"겨울엔 추워서, 여름엔 더워서, 허리,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지를 못해 법회를 못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교무님이 오시고 보일러, 에어컨 가동을 아끼시지 않았고, 의자도 법당에 10개나 설치돼 완전 새집이 됐다." 교도들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이 교무는 "교당은 재정비됐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법회 출석률이었다. 2~3명에서 10명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모든 교도들이 농업에 종사하다 보니 일요법회 때 빠지는 일이 잦았다. 애경사 때문에 빠지는 이가 생기니 법흥이 안났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월요일 저녁7시로 법회를 옮겼다. 바꾸고 나니 참석률이 90%이상으로 높아졌고 출석수도 30여 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 산외교당은 월요법회 후 전 교도들이 함께 모여 다과를 즐기며 문답감정을 한다. 도반들의 응집력이 더욱 돈독해 진다는 평가다.
소박한 그들의 원기100년의 '서원'

원기99년 칠보교당에서 진행된 법위단계별훈련에 참석한 산외교당 최상욱 교도회장은 만다라 그림을 통한 자신의 '서원'을 발표했다. 작은 원에는 5개의 칸을, 큰 원에는 12개의 칸을 그린 최 회장은 "현재 산외교당 법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5명이다. 작은 원의 5개의 칸은 그 교도수를 의미한다. 큰 원 12개처럼 12명 이상만 함께 출석해 법회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명을 '서원'했지만 현재 30명이 출석하는 산외교당은 여자단장인 서지덕 교도와 황만덕화 교도부회장이 법호를 받는 경사도 있었다.

여성회장인 서지덕 교도는 "2012년에 산외지역에 수해가 크게 나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등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허리까지 물이 차고 가구들이 다 넘어가서 무척 힘들었는데 주위 교구 교당에서 구호품을 보내주고 봉공회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교당 봉사일은 앞으로 빠지지 않아야겠다고 느꼈다. 늘 보은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최상욱 교도회장은 "산외교당은 다른 교당보다 남자교도 비율이 높고 젊다. 20년된 '일원회' 모임도 하고 있다"며 "일원회(회장 김윤관)는 평상시 먹고 노는 모임이 아닌 법공부를 하는 모임이다. 현재까지 일원회 부부단원들이 교당일에 잘 참석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법회가 끝난 후 이 교무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다과를 준비해 주신다. 법회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는데 다과를 하며 일상생활 얘기나 문답을 한다"며 "처음에는 교도들이 '교무님 숙소에 내가 들어가도 되나?'하며 어색해 했고, 교당에 다니면서 처음 들어와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다과를 통해 더욱 돈독한 정을 쌓고 응집력도 생기게 된 것 같다. 산외교당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는 교무님을 보필해 원기100년에는 출석률 100%를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 원로교무는 "우리 교도들은 법회를 보려고 일하다가 말고, 밥도 거르고 교당에 나온다. 그런 진심어린 간절한 마음을 느낀다면 모든 곳이 '교화할 만한 곳'이 된다"며 "나는 수도원에서 6년을 쉬고도 나와서 교화를 하는데, 퇴임 후 바로 이어서 교화를 한다면 얼마든지 퇴임 교무들도 교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제도가 일찍이 있었다면 더 수월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외교당 교도들은 적지만 하나로 뭉치는 큰 힘이 있다. 힘이 닿는 한 이 '응집력'으로 더 큰 교화 성장를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작지만 큰 교화대불공을 이룬 산외교당 30여 명의 교도들과 이묘신 원로교무. 그들의 둥근 얼굴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든든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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