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대불공 26

초발신심이 난 양원경 교도를 당시 대산종법사께 인사시켰다. 구릿골에서 종법사님은 반갑게 맞아주시며 "
잘왔다"하고 칭찬도 하시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그리고 "원경이 네가 청운회를 한 번 조직해서 전국의 모범이 되게 운영해 보아라"고 말씀하셨다.

양 교도는 종법사 말씀을 받들었다. 일구월심 청운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사람들을 모아 돌을 주었다. 탑을 쌓으면서 결속이 되어진 그 마음으로 원심회 김용법 회장과 마음을 합해 이산 박정훈 교무를 모시고 성대히 결성식을 마쳤다.

청운회의 사업 면에서는 매월 10일은 법회 보는 날로 정하고, 참석할 때는 부부동반하기로 했다. 법회 일에는 교당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당시 남원교구였던 지사·관촌·임실·남원교당까지 청운회 조직을 독려하여 성공적으로 결성시켰다. 그리고 다음해 봄·가을 행사를 정했다.

봄에는 5월5일 어린이날 행사를 청운회 자체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정하고, 가을에는 10월 하순에 하자는 것이다. 10월 행사에서는 각 교당 청운회 결성과정과 운영의 묘를 발표하는 것으로 정했다. 1차 행사는 담산 이성은 교무, 2차 행사는 월산 조원오 교무를 차례로 모시고 성대히 법회를 열었다.

당시 원불교 청운회 회장단은 물론 전북교구 청운회 회장단이 참석해 남원 인근지역 청운회의 발전 상황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오수교당 원로요인, 교도님들은 100여 명이 넘는 청운회 가족들을 크게 환영하고 잔치를 벌여 반갑게 맞았다. 그에 힘입어 오수교당 청운회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청운회로 성장하기도 했다.

교당 청운회 창립 1주년 법회에서 나는 "35명의 회원으로 청운회를 창립,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다함께 청운회 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감사패를 양원경·김용법 교도에게 전달했다.

양원경 청운회장은 "진리를 모르고 진리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은 덧없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붙잡아 주고 바로 세워 주는 것은 신앙과 수행의 힘이다"고 강조했다.

퇴임을 하고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봤다. '거북이가 정상에 오른 기분이랄까?' 내가 지금 무사히 주어진 사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았어도 애쓰고 고생스럽고 힘이 들었어도 내게는 스승님들의 훈증이 있었다.

한밤중에 이불 뒤집어쓰고 한 없이 울어도 봤지만 날이 새면 '언제 내가 울었더냐?' 흔적 없이 하루 일과를 충실히 하고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용타원 서대인 종사님의 훈증과 상타원 전종철 종사님의 간곡한 충고가 있었기에 내 마음과 생활을 추스릴 수가 있었다.

이제 나도 강을 건넜으니 뗏목을 버려야할 때다. 육지에서 뗏목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구성없으니 이제는 회광반조하여 영생토록 스승님 모시고 말석에서라도 보은하며 살 것을 서원한다. 그러기에 후진들이 하늘같이 보이고 감사하고 고맙고 대단해서 어떤 면으로든지 도와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난다.

지금은 스카우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뜻있는 동지와 함께 8년간 봉사하고 있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이어 가고 싶다.

"출가의 길을 걸으며 질풍노도에 작은 배 한 척이 구원선 없이 목적지에 당도하니 작은 배는 이리 찍히고 저리 찍혀서 부서진 대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침몰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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