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공부 19

사람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은 낙(樂)이요 사람 사람이 다 싫어하는 것은 고(苦)다. 누구나 다 복받기를 원하고 화(禍)는 멀리한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원하는 것과는 반대의 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이다. 영생과 인과설을 수없이 듣고 살지만 실제로 일을 당해서 취사를 할 때는 업습(業習)에 의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믿고 안다고 해도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기질을 내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이 범부 중생들의 삶이다.

후천 개벽시대의 특징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대이다. 대종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도정의의 요긴한 법을 가르쳐 주시고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밝혀줌으로서 인류가 나아갈 바를 분명하게 열어주셨다. 우주의 진리를 간단 명료하게 끌어다가 누구든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우리 손에 쥐어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심신의 부자유와 구속, 욕심과 사심으로 주인노릇을 못하고 매 경계마다 노예로 전락하여 한없는 고해에서 고해로 빠져나올 기약조차 못하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고 보편적으로 인지가 높아져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지도하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잘 살고 세상과 인류가 다함께 상생과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한 유일한 해답은 내가 실천해서 그 실지 효과를 내고 보여주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삼학중에 취사공부는 곧 실행공부이다. 나의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통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바르게 행하는 삶이 곧 활불(活佛)이고 무시선(活禪)이다. 즉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다. 나와 만유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순간순간 본말과 순리를 알아서 나의 육근작용을 통하여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한순간도 방심하거나 사심과 잡념으로 가려 있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과 같이하는 우주만유의 무대는 한 찰나지간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정의어든 기어이 죽기로서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죽기로써 버리는 취사공부로 기질단련을 끝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미 범부 중생심으로 길들여진 자신의 기질을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사람을 교화하는 방법도 실제로 내가 이법으로 기질변화·심성변화 시켜서 온전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교화이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지행합일이 되어야 지도자의 자격이 있고 종교도 실천하는 종교라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무위이화로 감화를 주게 되고 그 안에서 교화는 절로 될 것이다.

'세상에 종교가 많이 있으나 앞으로는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산 종교가 되어서 온 인류의 태양이 될 것이다.'

<우인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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