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묵 목사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늘에 올랐다." 408일간의 고공농성이라는 '슬픈 신기록'을 세우고 지난 8일 땅을 내디딘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의 말이다.

그가 그나마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힘겨운 싸움 끝에 해고자의 고용보장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지만, 정작 그를 기다린 것은 경찰의 체포영장이었다. 업무방해 및 건조물 침입혐의가 그 이유이다. 이 사실은 노동자가 발을 딛고 제대로 설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기우뚱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우선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는데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가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억압되고 있는 데다 그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마땅한 절차마저 보장되고 있지 않다.

게다가 바로 그 현실 때문에 단체행동 또는 고공농성과 같은 특별한 쟁의행위를 할 경우 대부분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 노사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 노동자가 쟁의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해 형사상 민사상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 오래된 국제적 규범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 규범이 무색하다.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자가 쟁의행위로 처벌을 받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니까 노동권의 보장 그 자체도 이뤄져 있지 않고 그 보장을 요구하는 절차도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절반에 이르는 비율이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것도 그 기울어진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가 오래 되었지만,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그 현실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고 시민사회의 일반적 인식도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존속하는 조건 안에서 자본의 일방적 우위로 인한 노동의 억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유권과 노동권의 균형을 의도하는 데 있다. 그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이들이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당당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자는 데 그 근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춰볼 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가 자본의 경쟁을 조절하는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근본적인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고 정당한 삶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요구를 실현하는 길이다.

지난 1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주목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조만간 "비정규직 대책 한국교회연대"를 조직하고 우리 사회의 핵심적 문제 가운데 하나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성격을 지닌 기회였다.

그 토론회 자리에는 지금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광판에 올라 호소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신한 동료 노동자와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참석하여 우리 사회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의 환기를 위한 연대를 호소했다. 언론에 기사화조차 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노동자의 현실을 통탄하면서 종교계의 연대를 절박하게 호소하였다.

기묘한 상황이 아닌가? 마땅히 이 땅 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거늘 저 하늘 높이 올라가 외치고 있다니! 누구도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하늘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그 절박한 호소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향한 것이지만,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외치는 그 호소는 언제나 저 높은 곳을 바라보는 종교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처럼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한 종교의 연대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천안살림교회, 한신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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