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교수의 현대건축이야기

▲ '왜색논쟁'을 겪은 부여박물관 지붕.
1967년대 말에 한국 건축계는 '부여박물관 왜색 논쟁'으로 난리였다. 당시 부여박물관(현 부여군 문화재사업소)이 일본 신사(神社)와 닮았다는 것이다. 박물관 정문이 흡사 일본신사의 정문인 '도리이(鳥居)'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고, 지붕 용마루의 모양새는 일본신사 지붕의 지기(千木)와 가츠오카(堅魚木)와도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에 건축가는 백제의 건축이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기에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고, 백제 전문가들은 일본신사는 일본 고유의 건축 양식이기에 부여박물관은 일본 건축이라고 반박했다. 과연 부여박물관은 백제의 건물일까? 아니면 일본의 건물일까? 건축가 김중업은 1967년 9월12일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건축가는 자기를 자기 건축에 표현한다. 그저 막연히 '전통의 내재미와 외적인 형식미'의 추구가 아니라 자기의 발견이고 더 큰 의미의 자기 즉 전통이 소화되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의 '조형'이 탄생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여박물관은 창작이 아니라 일본의 모방에 나온 습작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다. (중략) 부여박물관은 일본건축, 특히 일본전통건축의 현대화에 앞장선 丹下(단게씨의 작품)과 같은 처리방법 즉 선과 선이, 또 면과 관통교호(貫通交互)되는 디테일로 취급되어 있어 지독히 강렬한 일본냄새를 풍기고 있으며 이 냄새 자체가 '김수근 자신의 것'이라면 그저 '작가 자신의 개성이 지독히 일본적이다'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중략) 일본건축은 내부공간처리에서 오는 분위기감보다는 디테일의 장식성추구에서 오는 입체감이 발달되어 있어 공간 자체의 변화성은 무질서하거나 단조롭다. 따라서 시각처리가 일연(一連)적이 아닌데 그 특징이 있어 공간 자체는 무미 단조롭고 각 벽면요소들은 재치만이 강조되어왔다."

흥미롭게도 논쟁의 쟁점이 '형태'인 와중에도 김중업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관심의 대상이 '공간'임을 간접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건축은 전통적인 건축 형태의 직접적인 차용이나 형태의 모사가 아니라, 벽면이 공간의 '분위기감'을 위해 존재하며 '시각처리가 일연(一連)적'인 연속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당시 36세의 잘 나가는 젊은 건축가 김수근에게, 한쪽에서는 왜색 건축가라고 비난하고, 한쪽에서는 미성숙한 건축가라고 폄하하는 상황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김수근은 어떠한 형상적인 유추가 가능한 형태는 버리고 오직 공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찌보면 부여박물관 '왜색 논란'은 단지 김수근만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한국 건축계의 헤게모니가 형태에서 공간으로 넘어가게 하는 건축계 전반의 트라우마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건축계는 종종 직설적인 전통건축의 차용이나, 형태적인 모사에 알레르기적으로 반응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한옥의 기와지붕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전주시청사(김기웅, 1981)나 독립기념관(김기웅, 1987)과 같은 건물이 지어지고, 전통 갓의 형상을 지붕으로 삼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김석철, 1993)가 한국적 건축으로 여겨지고 있다.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금년 밀라노 엑스포의 한국관은 달 항아리의 형태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적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는 것일까? 또한 형태적 차용이나 모사는 옳지 않은 것일까? 다시금 부여박물관을 봐야할 것 같다. 공간론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다시금 한국적 건축이 무엇인지 물어봐야겠다.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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